유난히도 굴곡이 많았던 2010년이었다. 한국경제 역시 그랬다. 다른 나라들에 견줘 경제지표는 A학점을 줘도 무방했지만, 수많은 악재와 변수들이 1년 내내 한국경제를 괴롭히기도 했다. 지난 1년 우리 경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된 것은 무엇이고 잘못된 것은 또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떤 인물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는지 등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뜨는 인물이 있으면 지는 인물도 있기 마련. 영광의 주역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좌절의 주인공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10년엔 최고경영자(CEO)들의 부침이 지독히도 엇갈린 한 해였다. 'CEO리스크'란 말도 자주 회자됐다.
복귀, 그리고 퇴장
인물로 친다면 올해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이건희 삼성회장이다. 2008년 비자금사건의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는 지난달 경영 전면에 전격 복귀했다. 아울러 그룹 컨트롤타워(미래전략실)도 부활됐는데, 실무사령탑으로 임명된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도 2010년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힌다. 이재용ㆍ이부진 남매의 사장 승진 역시, 삼성 후계구도의 완성형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 중대 변화로 꼽힌다.
반면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은 완전히 배제됐다. 이 회장 복귀에 맞춰 '삼성의 과거 허물을 안고 떠난다'는 의미로 해석됐지만, 실질적 2인자였던 이 전 실장을 비롯해 김인주ㆍ최광해씨 등 '관리의 삼성'을 대표하던 재무라인이 한꺼번에 퇴장한 것은 누구도 예상 못한 부분이었다.
올해 복귀한 총수 중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도 있다. 지난해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경영권 분쟁, '승자의 저주'로 인한 그룹 워크아웃 등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올해 경영일선으로 돌아오면서 현재 그룹 정상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수난과 고통
'숙적' 검찰 앞에서 총수들은 올해도 마음을 조여야 했다. 우선 김승연 한화 회장.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검찰에 구속 기소돼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김 회장은 3년 만에 또 다시 검찰 문턱을 넘어야 했다. 검찰소환에 대한 소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 팔자가 센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이 또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실제 그의 답답한 심경에 대한 가장 솔직한 표현이기도 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역시 편법 상속 의혹으로 인해 검찰의 칼끝에 시달렸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현재 암 투병 중이다. '대통령 사돈'이란 각종 구설 속에서도 재계 대표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조 회장이었지만, 건강악화로 결국 전경련회장직까지 내놓아야 했다.
실적의 희비
CEO에 대한 평가는 결국 시장이 내리는 법. 실적에 따라 웃고 울은 CEO가 유난히도 많은 한 해였는데, 특히 같은 업종 같은 그룹 내에서도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선 LG그룹. 지난 4년 동안 LG전자를 이끌었던 남용 부회장은 끝없는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9월 결국 옷을 벗었다. 불과 1년여전만해도 휴대폰으로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톱3까지 진입했던 LG전자지만 스마트폰의 거센 물결을 순간적으로 놓친 것이 두고두고 화가 됐다.
반대로 LG화학은 '그린(친환경)'물결에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편승,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잇따라 공급하며 대도약을 이뤘다. 그 덕에 CEO인 김반석 부회장도 스타가 됐다.
통신업계도 마찬가지.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스마트폰 대응 실패와 실적부진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연말 그룹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좌천성 영전'을 했다. 반면 재빠르게 아이폰과 손잡고 스마트폰 흐름을 주도한 이석채 KT회장은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금융CEO들의 부침
그룹 수뇌부가 서로 물고 뜯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가장 지배구조가 안정됐다는 신한금융지주에서. 그 결과 국내 은행권의 상징적 존재였던 라응찬 지주회장은 반세기 은행경력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해야 했고, 신상훈 지주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 모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신한 사태를 통해 'CEO리스크'의 의미가 새삼 부각됐다.
금융그룹회장을 꿈꿨던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도 당국의 전면적 사퇴압박을 이기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고, 특히 재임 중 부실이 드러나면서 30억원 가치의 스톡옵션도 취소당했다. KB금융그룹의 수장이 된 어윤대 회장은 올해 확실하게 뜬 케이스. 대통령측근 논란에도 불구, 회장 취임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영업력 강화를 통해 조직 장악도를 높여가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은 올해 드디어 대형 은형의 꿈을 이루게 됐다. 우리금융지주에 총력전을펴다 막판 외환은행으로 급선회하는 놀라운 경영 판단으로, 하나금융을 마침내 '빅3' 반열에 올려 놓았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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