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40)씨가 두 권짜리 산문집 <우리가 보낸 순간> (마음산책 발행)을 펴냈다. 그 중 '시 편'은 김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이 달 초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시로 여는 아침' 원고 중 99편을 추려 묶은 것이고, '소설 편'은 그가 2008년 한 해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장집배원'을 맡아 썼던 소설평 49편을 묶은 것이다. 김씨가 직접 시 혹은 소설을 골라 소개하면서 짤막한 에세이를 붙였다는 점이 공통된 형식이다. 우리가>
여기 실린 김씨의 글은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평 혹은 소설평으로 불리는 글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시와 소설에 붙인 에세이의 성격 때문인데, 그의 글은 제시된 시와 소설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 삼아 펼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다. 원고지 2매 안팎 분량의 이 짧은 글들에서 김씨는 감각적 문장으로 사랑과 인생에 관한 깊은 사유를 녹인다.
예컨대 그는 이근화 시인의 시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를 소개하고는 엉뚱하게도(?) 지난 겨울 미국 포틀랜드에서 주문한 허브차 티백을 끓는 물에 우려내는 '4분이나 5분 정도'에 대해 말한다. "다른 일을 하기에는 애매한 자투리 같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부엌에 서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창 밖을 내다보면서요." 시와는 상관없는 듯 진행되던 글은 이런 결구에서 시와 만나면서 기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지난 겨울 내 인생이 마음에 들었던 순간은 그 몇 분, 그러니까 차가 우러나기까지 4분이나 5분 정도였어요."
김씨는 또 마이클 커닝햄의 에세이 '아웃사이더 예찬'을 다루면서, 자신이 게이임을 고백하는 손자에게 "내가 네 나이였으면 나도 한번 그래보고 싶구나"라고 대꾸하는 할머니를 조명하며 이렇게 쓴다. "제가 바라는 노년은 이런 것이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라는 노인의 삶. 아니, 뭐야? 칠십 년을 살았는데도 아직도 안 해본 일이 이렇게 많다니."
이처럼 원래의 시, 소설과 그것에 딸린 글이 주객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채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 김씨 글의 개성이자 매력이다. 김씨는 "작품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장이, 그것이 설령 각주의 일부일지라도, 내게 와서 (내 안의) 뭔가를 건드렸는지에 대해 써보자는 생각이었고, 그것이 내 평소 독서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엄선한 시와 소설을 음미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특히 시는 김씨가 신문 연재 기간 동안 최신 문예지와 신간 시집에서 고른 것들이어서 최근 한국 시의 동향을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김씨는 "전통적 시적 정형이나 운문성을 갖춘 시보다는 문장이 예쁜 시, 그러니까 참신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말을 운용하는 시 위주로 골랐다"고 말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3년에 시로, 이듬해에는 소설로 등단한 김씨는 5년 간의 직장 생활을 거친 뒤 2002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주요 문학상을 휩쓴 그의 소설적 성취와는 별개로, 공저를 제외하고도 장편소설 6권, 소설집 4권, 산문집 4권을 낼 만큼 그의 성실성은 정평이 있다. 그는 이번 책의 '소설 편'에 붙인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전업작가가 된 이래)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작가로서 그의 철저한 윤리의식과 결기가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 산문집 출간과 함께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 <7번국도>(1997)를 전면적으로 손본 개정판 <7번국도 Revisited>(문학동네 발행)를 낸 김씨는 "문예지에 연재하다 중단했던 두 편의 장편소설 '원더보이'와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을 집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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