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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64>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하이쿠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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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64>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하이쿠 한 수

입력
2010.12.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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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는 일본의 가인(歌人)이다. 일찍이 사회사상에 눈 뜨고, 생활 감정을 풍부하게 담은 시로, 일본에서 '국민시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제 합병한 국치의 날에 이런 시를 남겼다.

"지도 위에 한국에다 시꺼멓게 먹칠을 하면서 가을바람을 듣는다.(地圖の上 朝鮮國に墨々と墨をぬりつつ秋風をきく)"

경술국치 100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 해를 맞는 일본 언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의 비판이 줄었다며,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한국 여론이 전향적 논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유미우리(讀賣)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연두 TV연설에서 합병 100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경제에 대한 자신감으로 수출대국이 된 것을 '기적의 60년'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대서특필했다 한다.

이 신문기사가 특히 한국 대통령이 이 경술국치 100년을 언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 경제 발전을 앞세운 소식은 한국의 현 정권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일부 보수적 경제학계의 논리를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한편 북한의 경우는 북의 조선사회민주당이 남의 민주노동당과 합동으로 <한일합병조약 날조 100년> 과 관련하여, 이 조약문서의 위법성을 강조하고, 일본의 철저한 사죄와 배상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응당한 역사적 도덕적 책임을 촉구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오른 재일3세라고 한 젊은이의 글에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운 시가 생각났다며,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이 시 한 수를 "지도 위 조선 나라를 검디검도록 먹칠해 가는 가을바람 듣는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할 것이지만 이 때 일본의 진보적 작가들이 일제의 조선침략에 반대하여 조선 사람들에 동정을 표했던 연대의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시의 "墨(ぬ)りつつ"라고 되어 있는 구절은 "먹칠을 하면서"라고 번역해야 할 터이고, 일찍이 함석헌 선생이 "이 시를 늦게야 보게 된 것이 부끄러웠다"며 "한국의 마음이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한 바로 그 시다.(함석헌;<오늘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 ,한길사,335쪽)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뒷시대에 <김립시집(金笠詩集)> 을 낸 이응수(李應洙)가 휘트먼ㆍ김삿갓과 함께 세계 시단 3대 혁명아로 평가한 일본 시인이었다.(이응수; <세계시단 3대 혁명아 윗트만, 石川啄木, 金笠> , 중앙일보, 1930, 2. 8.)

그런데 이시카와의 이 시가 지어진 지 100년 만에 일본 총리라는 사람이 북녘에 붙잡힌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서 일본 자위대를 한국 땅에 파견 운운했다고 한다. 을사조약을 강제하고 제일 먼저 한국 땅 독도를 제 나라 시마네 현에 그려 넣은 침략 근성.

식민통치를 반성하고 백번 사죄해도 모자랄 이 해에, 북녘의 자국민을 구출한다고 한국 땅에 자위대를 파견한다는 발상은 중국으로 가는 길을 빌리자며 임진왜란을 일으킨 역사를 연상시키는 망언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 정부에 이를 타진 운운하다니, 이 경술국치 100년을 다시 욕되게 하는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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