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전쟁'이란 용어를 여러 차례 썼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언급은 어떠한 위험도 무릅쓸 각오가 있어야 북한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지난 23일 동부전선을 방문했을 때도 "강력하게 대응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몇 차례 '전쟁'이란 단어를 썼지만 이날 언급의 수위는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벌써 야권 등 일부에서는 "실제 상황에서는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이후인 지난 5월 제주도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전쟁'이란 말을 꺼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언급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상한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일각에서 거론하고 있는 '전쟁불사론'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고 있다.
이번 발언은 연평도 도발 이후 이 대통령 발언과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인내와 관용이 아닌 강력한 응징만이 도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또 '막대한 응징'(11월23일) '가차없는 대반격'(12월23일)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여왔다.
특히 이 대통령은 북한이 스스로 도발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지난 9일 말레이시아 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는지를 알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북한 지도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마당에 이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도발 대비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인식은 내년 대북∙국방정책의 기조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날 발언은 또한 지지층 결집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떨어졌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20일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 이후 반등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발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 역시 만만치 않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며 "전쟁을 통한 승리가 아닌 전쟁을 하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고 비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금은 도발에 대한 대비 못지 않게 한반도 긴장 완화도 중요하다"며 "이 대통령이 도발 대비만을 강조하고 긴장을 풀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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