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한국형 복지국가' 제안으로 촉발된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박 전 대표 등이 제시한 복지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재원 확보 등 구체적 방안이 제시돼야 판단할 수 있다"면서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이 기존의 좌우, 보수ㆍ진보 등 이념 논쟁과 차별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은 최근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쟁 과정에서 보여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하는 논란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소득보장과 생애 주기에 따른 맞춤형 사회서비스를 함께 지원하는 박 전 대표의 '한국형 복지국가' 개념이 두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어서 여야간의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동면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득보장 중심의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생애 주기에 맞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은 의미가 있다"며 "기존 한나라당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오히려 야당의 입장에 근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내 친이계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최고 복지의 기반'이라고 강조하며 성장을 통한 수입 내에서 복지 비용을 지출하는 '한국형 복지 모델'을 제시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재원 확보 방안과 각론이 없이 원칙만 제시한 수준에 머물렀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 제공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필수적"이라며 "그럴 경우 증세가 불가피한데, 이는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기존 입장과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회서비스 제공을 강조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사회투자국가'와도 비슷한 개념"이라며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이 한나라당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교수는 재원 확보를 위한 야권 일각의 부유세 도입 주장에 대해서는 "복지보다 소득 재분배 효과가 크고 자칫 계층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재정 문제만 강조하다가 복지 정책 논의 자체를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복지' 화두 선점을 둘러싸고 여야가 지나치게 정치적 말싸움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신 교수는 "복지는 전통적으로 보수진영보다 진보진영이 더 관심을 갖는 주제이므로 야권은 박 전 대표와 여당에게 복지 이슈를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야 정당과 대선주자들이 대선 과정에서 다양한 복지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심도 있는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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