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사랑 예찬' 사랑,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사랑 예찬' 사랑,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

입력
2010.12.24 12:13
0 0

알랭 바디우 지음ㆍ조재룡 옮김

길 발행ㆍ166쪽ㆍ1만5,000원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지성들이 대개 보편적 진리의 해체로 나아갔다면, 알랭 바디우는 빈사 직전에 몰린 그 진리의 복원을 꾀하고 있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의 책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는데, <사랑 예찬> 은 사랑을 진리 생산의 한 절차로 보는 그의 철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바디우가 2008년 사랑을 주제로 연극기획자와 나눈 대담을 묶은 책이다.

바디우 철학의 전모를 모르더라도 책은 사랑에 대한 여러 성찰로 가득차 있어, 지금 사랑을 시작했거나 사랑에 흠뻑 빠져있는 연인들이라면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바디우가 우선 비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을 종의 번식을 위한 위장술, 욕망의 미사여구 정도로 보는 냉소적 시각이다. 하지만 바디우에게 사랑 없는 섹스는 자위행위와 다름없다. 그는 "사랑을 포기하고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앙"이라며 "사랑을 포기하면 삶이 완전히 무미건조해진다는 사실을 언급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랑은 일회적인 인스턴트식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무엇을 지속시키고 하자는 욕망"이다. 그러니까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한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매몰차게 극복해가는" '진정한 사랑'이 그의 관심 대상이다. 보잘것없는 우연한 만남을 운명처럼 느끼게 하는 사랑의 힘에 주목하면서 그가 끄집어내는 사랑의 가치는 지속성, 약속, 충실성 등이다. "사랑은 순간에 일어난 우연에서 시작되어, 당신이 영원을 제안하게끔 만드는 보기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다."(59쪽) 이런 사랑 예찬이 낭만적 환상이라고 느낀다면 책을 덮으면 그만. 하지만 사랑 속에서 영원성의 도약을 느껴본 이라면 난해한 그의 글을 읽는 수고가 그리 아깝지 않다.

책은 사랑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유로 본격적으로 이어지는데, 사랑은 둘에 관한 진리, 달리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차이'라는 진리를 구축하는 경험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는 둘의 관점에서 행하는 세계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진리가 없다'는 탈근대 사상가들의 상대성과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바디우는 그렇다고 폭력성과 배타성의 원천으로 지목된,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바디우가 복원하고자 하는 진리는 '복수의 진리들'이며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출현한다는 것이 바로 그의 '사건의 철학'이다. 바디우에게 그 진리가 출현하는 사건 중 하나가 남녀의 우연한 만남인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