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그리고 연말이다. 나는 성탄절이 되면 하느님의 아들인 줄만 알았던 예수님에게도 신앙심 깊은 엄마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 짓곤 한다. 무엇보다 연말이 되면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에서 말한, 시간에 관한 정확한 통찰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이다. 정말 또 한 해가 장엄하게 가고 있다.
돌아보면 올해만큼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웠던 해가 또 있었을까 싶다. 어린 군인들이 배 안에서 목숨을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온 나라가 전쟁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이런 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레바논 내전에서 희생된, 말 그대로 '그을린 시간'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와 같은 심정으로 입이 마르고 두려웠다.
작년 겨울, 뉴욕의 9ㆍ11 현장 제로 그라운드에 갔던 때가 기억난다. 그날 밤 유니온 스퀘어 뒷골목의 루터교 대여 숙소에서 자는 동안 내내 악몽을 꾸었다. 천안함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을 때에도 악몽을 꾸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이 군인이기 이전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개인들이었기에, 악몽 속에서 그 이야기들이 수면을 가르고 올라오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만 믿고 살아가기는 몹시도 어려워졌다는 것, 그저 이 악몽을 혼자서 견디는 것만이, 내면화하고 버티는 것만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무서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제일 속상했던 것은 전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그 큰 원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치 엘리트들의 큰소리만 있을 뿐, 통합과 공존을 얘기하는 통 큰 리더는 보이지 않았다. 분단에 빼앗긴 그 오랜 시간을 되풀이 하겠다는 것인지, 순진하고 어리숙한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정말 알 수가 없다.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할까? 이렇게 악화되는 분열, 훼손되는 생태계, 사람들의 내면의 황폐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민하게 되었고, 토마스 베리 신부가 쓴 를 통해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현대 인류가 직면한 안팎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생태대의 실현'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지구 생태계를 포함해 모든 관계들이 다 깨져 있다는 것이 그 전제였고, 우주와 그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역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돌아보자는 제안이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다른 모든 생명체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지구와 인간, 인간과 인간, 그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우주론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하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문화적 '이야기(story)의 복원'이다. 이야기야말로 불가해한 삶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개인과 사회 사이에 틈이 생기고 갈등이 생길 때 효과적으로 극복하게 하는 에너지와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안팎으로 황폐해진 마음을 다스리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악몽으로 기억되는 올 한 해는 그냥 아무 일 없이 빨리 지나가버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한 말끔한 얼굴을 들이미는 새해를 만나고 싶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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