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이다. 인터뷰를 위해 '영구'를 처음 만났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래 봤자 바보 아닌가. 내심 업신여김도 없지 않았다. 녹화 도중 영구 모습 그대로 나타난 그를 심드렁하게 대했다. 그런데, 가만, 영구에 대한 해석과 웃음의 전략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영리함과 날카로움이 번득였다. 어, 이 친구 봐라. 놀라움과 감탄, 공감 끝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때 이미 그는 영화에 대한 꿈과 집념,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비웃었다. 기껏해야 와 나 만들 게 뻔한데.
■ 사실 그랬다. 한 번은 영구 캐릭터를 팔고, 또 한 번은 엉성한 마스크 뒤집어쓰고 로봇흉내나 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1995년 을 만들었다. 시사회장은 썰렁했고, 그나마 호기심으로 영화를 본 기자들 얼굴엔 역시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심형래는 분명 달라졌고, 영화에 대한 그의 이야기도 결코 코미디가 아님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에게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을 붙여주기로 했다. 주위의 비웃음을 각오하고 그 해 신문에서 처음으로 '코미디언 심형래'가 아닌 '영화감독 심형래'라고 쓰겠다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 그렇게 '영화감독'이 됐지만, 곡절도 아픔도 많았다. 충무로는 그를 배척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영구 취급했다. 영화가 나올 때마다, 늘 고상한 비평가들은 완성도로 모욕했고, 그의 야심 찬 포부는 무모한 애국주의와 허풍으로 규정했으며, 그는 여전히 바보 '영구'캐릭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코미디언일 뿐이었다. 도 그랬으니,'영구'가 직접 나오는 (29일 개봉)는 말해 무엇 하랴. "하다 안 되니까 이제는 20년 전 추억을 판다""영화감독이 아니라 역시 3류 코미디언"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 4년 전 촬영 중에 처음 그에게서 의 계획을 들었다. 발상이 기발하고, 스토리가 재미있어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가능할까. 그러나 심형래는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할리우드 스타 하비 케이틀을 끌어들여 영화로 만들었다. 더구나 정서가 맞지 않으면 연기조화 자체가 불가능한 코미디이니 그 과정이 오죽 힘들었을까 마는"영구니까, 할 수 있었다"는 한마디만 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 심정, 웃음 뒤에 숨은 그의 눈물을 알기에 가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박수를 받길 바란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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