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바둑계는 크고 작은 화제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한국이 중국을 누르고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한 것은 비단 바둑팬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준 쾌거였다. 이밖에 6개월 간의 휴직을 끝내고 바둑계로 돌아온 이세돌이 파죽의 24연승을 거두며 단숨에 정상에 복귀한 반면 이창호는 연간 승률이 50%대에 불과, 프로생활 25년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0년 바둑계 10대 뉴스를 통해 올해 국내외 바둑계를 되돌아 본다.
아시안게임 금 3개 싹쓸이
사상 최초로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 3개를 싹쓸이했다. 혼성페어에서 이슬아-박정환이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이세돌 이창호 조한승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이 출전한 남자단체전과 이민진 조혜연 김윤영 이슬아가 나선 여자단체전까지 잇달아 우승해 세계 최강국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2관왕 이슬아는 ‘바둑 얼짱’으로 소개돼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낌짝 스타로 부상했다. 그러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바둑이 제외된다는 소식이 전해져 바둑계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세돌 복귀 후 24연승
6개월간의 휴직을 끝내고 올 초 바둑계에 복귀한 이세돌이 1월부터 4월말까지 파죽의 24연승을 거두며 단숨에 비씨카드배를 거머쥐었다. 올 한 해 동안 74승16패(승률 82%)를 거둬 다승 승률 연승 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물가정보배와 KT배서도 우승, 3관왕에 올라 2년만에 다시 최우수기사로 선정됐다. 휴직기간 중 자신의 첫 명국해설집도 발간했다. 평소 까칠한 성격 탓에 주위 사람들과 종종 마찰을 빚었던 이세돌은 현역 복귀 후 인간적으로도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여 휴직이 오히려 약이 됐다는 평가다.
이창호 승률 55%로 추락
이창호는 연초 농심배서 막판 3연승을 거둬 한국의 우승을 또다시 이끌어냈고 국수전 통산 10회 우승을 달성, 상반기에는 그런대로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끝없이 추락, 올해 41승33패 승률 55%를 기록했다. 1986년 입단 이후 25년 동안 승률이 70% 아래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결혼 후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1월에 1위였던 랭킹이 12월에는 7위로 내려갔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세계대회 출전권을 받기 힘들어지고 세계대회 우승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황소 삼총사' 뚝심 대활약
박영훈 원성진 최철한, 1985년생 동갑인 이들은 어릴 적부터 송아지 삼총사라 불리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왔다. 최근에는 세 사람 모두 후배들에 밀려 활약이 뜸했는데 올해 박영훈이 국내 최대 기전인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우승했고 원성진은 GS칼텍스배를 차지했으며, 최철한은 맥심커피배 우승에 이어 국수전에서도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이들 황소 삼총사는 올해 다승 랭킹에서도 2위(최철한) 3위(박영훈) 5위(원성진)로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박정환 "차세대 선두는 나"
열일곱살 소년장사 박정환이 연초에 원조 십단 이창호를 꺾고 원익배 십단전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비씨카드배와 삼성화재배서 잇달아 4강에 오르는 등 꾸준한 활약으로 드디어 12월에는 생애 처음으로 국내 프로기사 랭킹 2위로 올라 섰다. 특히 광저우 아시안게임서 2관왕을 차지해 차세대 선두주자의 위치를 확고히 굳히면서 병역 혜택까지 받게 됐으니 마치 호랑이가 날개를 단 셈이어서 앞으로 더욱 큰 활약이 기대된다. 이제 박정환에게 남은 과제는 세계대회 우승뿐이다. 20101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10년체제 무너뜨린 김윤영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윤영이 여류기성전에서 우승, 루이 박지은 조혜연으로 어어지는 국내 여자바둑계 트로이카체제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깨뜨렸다.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운영했던 여자상비군 훈련의 효과로 국내 여자기사들의 기량이 급성장하면서 여류기전의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여류기성 타이틀을 거머쥔 김윤영을 비롯, 아시안게임서 슈퍼스타로 거듭난 이슬아, 여자단체전서 중국 주장 루이를 꺾은 이민진, 한국여자기사 최초로 세계대회 16강에 진출한 박지연 등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옥집 해프닝' 룰 정비 시급
지지옥션배 안관욱과 김윤영의 대국에서 옥집을 정상적인 집으로 계산해 반집 차이로 승부가 뒤바뀐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현행 대국규정에 따르면 두 대국자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결과는 그대로 유효하다. 그러나 바둑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계속되자 이에 부담을 느낀 승자 안관욱이 다음 대국을 기권하고 말았다. 이밖에 삼성화재배 통합예선과 아시안게임서도 한국룰과 중국룰의 차이 때문에 적지 않은 혼선을 빚었다. 바둑이 스포츠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려면 바둑룰과 대국규정의 정비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첫 해외 보급 10개국 파견
올해부터 해외에서 바둑보급활동을 펴고 있는 프로와 아마추어 기사들에 대해 공식적인 정부지원이 시작했다. 현재 미국 호주 독일 태국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헝가리 스페인 네덜란드 등 10개국에 나가 있는 프로기사 9명과 아마추어 8명이 월 100만~200만원씩 활동비를 받고 있다. 해외에 파견된 바둑지도자들에게 정부지원금이 지급된 건 처음이므로 올해가 한국바둑의 공식적인 해외 바둑 보급 원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세, 한국압도
한동안 국내용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던 콩지에가 올 들어 갑작스레 세계기전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전체적으로 중국세가 한국을 압도했다. 콩지에는 현재 LG배 후지쯔배 TV바둑아시아선수권 등 3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 구리가 삼성화재배를 거머쥐었다. 한국은 이세돌이 비씨카드배, 최철한이 4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응씨배를 갖고 있는데 얼마전 이세돌이 춘란배 결승에 올랐다.
"머리 좋아져" 과학적 입증
바둑이 인간 두뇌의 구조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팀이 바둑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뇌영상 연구를 통해 장기간의 바둑훈련이 뇌기능 발달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결과는 뇌영상학 분야의 저명한 전문지인 ‘뉴러이미지(Neuroimage)’ 8월호에 게재됐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