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개 직업 전전하다 '카지노+리조트' 대박
유럽식 건물들 사이를 흐르는 운하에는 쪽배(곤돌라)가 유유히 떠 있고 뱃사공은 손님을 위해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른다. 머리 위로 펼쳐진 새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다.
유럽의 한가로운 오후를 떠오르게 하는 이곳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본떠 만든 마카오의 대형 리조트, '베네시안 마카오'다. 30만평(98만m²) 넓이의 이 리조트에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와 초대형 회의장(컨벤션 센터), 객실 3,000개가 모두 스위트룸으로 꾸며진 호텔이 들어서 있다. 운하는 이 리조트를 흐르는 실내 운하이고, 하늘은 대형 천장에 그림으로 그려진 '인공 하늘'이다.
이 리조트의 주인은 '카지노 황제'로 널리 알려진 셸던 애덜슨(77)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 회장. '어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를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복합 리조트의 성공
애덜슨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온 유대인 가정에서 1933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택시기사였는데, 여섯 식구가 모두 한 방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문 등을 팔았던 애덜슨은 12살 때 삼촌에게 빌린 돈으로 직접 신문 가판대를 열어 첫 사업을 했다.
그 후 투자 상담사, 대출 중개인, 재무 컨설턴트 등으로 일했고 화장품 판매사업도 했다. 60년대에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사를 차리는 등 그가 평생 거쳐온 직업만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뉴욕시립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하는 등 공부보다는 사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애덜슨이 본격적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은 79년 컴퓨터 무역전시회인 컴덱스(Comdex)를 개최하면서부터다. 그가 개인용 PC 시대의 태동을 감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컴덱스는 이후 세계 최대 규모, 최고 권위의 연례 컴퓨터 전시회로 자리잡는다. 그는 1평방피트(약 0.03평)를 15센트에 빌린 후, 전시업체에 평방피트당 40달러에 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카지노 사업에 뛰어든 건 그의 나이가 이미 쉰이었던 88년. 애덜슨은 동업자들과 라스베이거스의 샌즈호텔&카지노를 사들였는데, '늦깎이' 카지노 사업가였던 그는 곧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다.
원래 라스베이거스에는 비슷비슷한 호텔과 카지노 일색이었다. 그런데 애덜슨은 카지노밖에 없던 라스베이거스에, 미국 역사상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컨벤션 센터를 지었다. 또 명품 쇼핑몰, 유명 레스토랑을 유치하고, 곤돌라가 다니는 인공 운하를 만들어 최고급 복합 리조트를 완성했다. 91년 두번째 아내 미리암(65)과 베니스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이 대형 리조트가 바로 96년 개장한 '베네시안 리조트 호텔 카지노'다. 베네시안은 상업적 성공을 이뤘을 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널리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급 호텔로 꼽히고 있다.
그 후 애덜슨은 아시아 시장에 집중했다. 마카오에 2004년과 2007년에 각각 '샌즈 마카오'와 '베네시안 마카오'를 열었고 올 6월에는 싱가포르에 '마리나배이 샌즈'를 열었다. 우리나라 진출 역시 몇 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정부가 내국인의 카지노 입장을 허용하면 리조트를 짓겠다는 입장이다.
리조트 사업 성공으로 그는 2007년, 2008년에 빌 게이츠, 워런 버핏에 이은 미국 내 세 번째 부자(포브스 집계)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도설이 나돌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올해는 미국 갑부 13위(147억 달러)에 그쳤다.
그가 돈을 쓰는 곳
애덜슨은 의학 분야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내과 의사인 아내 미리암과 함께 '미리암 셸던 애덜슨 의학 연구 재단'을 세워 전세계 70개 기관과 200명의 과학자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분야의 과학자와 의사가 협업으로 연구를 진행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미리암은 약물중독클리닉도 운영하고 있는데, 애덜슨이 전처와 사이에 낳은 아들 두 명은 실제로 약물 중독으로 고통 받았다고 한다. 애덜슨 스스로도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어 지팡이에 짚고 걷는다.
미국 공화당과 유대인 관련 단체에 대한 후원금 역시 아끼지 않는다. 애덜슨의 집안은 원래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그는 부가 늘어나면서 확고한 공화당 지지자가 됐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는 "내가 왜 남들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되느냐"고 말했을 정도. 2005년 부시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 때는 애덜슨 부부가 각각 최고 후원금 한도인 25만 달러씩 내기도 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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