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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5·끝> 인권위 떠난 유남영·문경란 前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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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5·끝> 인권위 떠난 유남영·문경란 前상임위원

입력
2010.12.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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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사태는 보혁의 권력 다툼 아니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1년은 제 인내심을 시험하는 기간이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인권위의 심각한 상황을 알려야겠다. 결심을 한 겁니다. 한 순간의 결정이 아니었어요."(유남영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등의 지적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이 정도다 생각을 하니 문제제기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문경란 전 상임위원)

11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 전 상임위원의 사퇴는 설립 9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들은 현 위원장의 조직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일종의 조직 내 '넘버 2'의 반란이었다.

둘의 사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이 물러나자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식물 인권위' '무능하고 독선적인 현 위원장' 등 인권위 안팎의 비판이 커져갔다. 비상임위원인 조국 교수 등의 후속 사퇴도 줄을 이었다. 인권위가 위촉한 전문ㆍ자문위원 70여명도 자리를 떠났다. 인권위의 한 간부는 "곪았던 상처가 두 위원의 사퇴로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고 표현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두 전 위원을 차례로 만났다. 사퇴하기 며칠 전 만났던 10월 말과는 표정부터 사뭇 달랐다. 유 전 위원은 반도의 땅끝인 전남 해남군에서 한 달간 지친 심신을 달래고 막 올라온 참이었다. 문 전 위원 역시 "사람 많은 곳에 왔더니 정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오랜만에 감행한 도심 속 외출이었다. 사퇴 전 말과 표정에 녹아있던 "피곤하고 힘들다"는 하소연은 사라졌다.

이들의 사퇴 이유는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두 전 위원은 상임위 결정 사안을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하자는 위원장의 운영규칙 개정안 상정을, 상임위원의 의결권 자체를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고 떠났다. 일부는 보수와 진보 혹은 좌와 우간의 권력 다툼으로 보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간 내부 권력다툼은 절대 아니다. 상임위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굴욕인 상태에서 얼마나 참아야 하느냐는 개인의 품위 문제였다. 그럴 바에야 우리가 물러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인권위의 문제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유 전 위원이 자신의 사퇴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결정적인 갈등이 있었다고 유 전 위원이 털어놓았다. "천안함을 둘러싼 반대 목소리를 정부가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것에 대해 인권위가 의견을 내야 한다고 주장할 때"라고 했다. 유 전 위원은 상임위에 이를 안건으로 제출했다. 현 위원장은 "상임위원은 안건을 상정할 권한이 없다"고 반대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간 3인으로 구성된 상임위원은 관행적으로 주요사안에 대해 안건을 내고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는 절차를 밟아왔지만 현 위원장이 제동을 걸면서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문 전 위원 역시 유 전 위원의 인식에 공감했다. "위원장의 결정으로 상임위원은 안건상정권과 의결권을 모두 박탈당했다. 위원장에게, 위원회에 쓴 소리를 하는 상임위원의 손발을 묶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의 사퇴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는 설명. 그러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무책임하다"는 비난부터 "사퇴 이후 사실 달라진 게 없지 않느냐"는 지적까지 이어졌다.

문 전 위원은 "모든 비판을 달게 받는다"고 인정했다. "임기 전까지라도 남아서 위원장의 독단을 막아야 했던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한나라당 추천 인사였던 터라 사퇴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 때문인지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다. 보수냐, 진보냐로 다툴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전 위원도 "우리의 사퇴 이후 현재 인권위가 큰 손상을 입은 건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회복할지 갑갑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퇴 이후 이들은 나름의 청사진을 세워두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권위를 벗어났으니 보다 폭넓게 인권을 바라보겠다는 의지표명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국제적 통용기준)를 제시하고 싶다. 국제사회의 인권기준을 한국이 그대로 적용하고 따르는 것, 이것이 인권의 한 단계 도약이다."(유 전 위원)

"여성 인권 부문에서 우리보다 인권 의식이 떨어져 있는 국가와 소통하며 우리의 인권 역사를 알려줄 때가 됐다. 하나하나 준비해 가겠다."(문 전 위원)

둘은 비록 떠났지만 인권위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인권위가 지금 그나마 역할을 하는 건 전부 직원들의 땀이다. 이들의 열정이 사라질 때 진짜 인권위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아직 그들을 믿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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