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의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가 당나라 시인 왕적신이 경험한 암흑 속의 대국이다. 왕적신은 어느 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만 사는 외딴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두 사람이 벽을 사이에 두고 누워 말로 바둑 두는 것을 들었다."동의 5, 남의 9에 두었습니다." "동의 5, 북의 8에 놓았다."그러다가 36수에 이르러 시어머니가 "자, 내가 이겼지"했고 며느리는 "예, 그렇습니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11월 28일 한국에서도 어둠 속의 대국이 펼쳐졌다. 왕적신이 경험한 것처럼 불빛 없는 깜깜한 밤에 말로써 한 대국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두 시각장애인이 경기를 한 것이다. 한국의 송중택(50) 아마 5단(한국기원 공인)과 일본의 가키시마 미추하루(33) 아마 3단이 시도대항 장애인바둑대회의 개최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개대국을 했는데 송씨가 석 점을 깔아주고도 불계승을 거뒀다. 전국장애인바둑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시각장애인으로는 한국 아니 세계 최고수로 인정받고 있다.
계가, 복기, 완벽한 패싸움…조훈현도 높이 산 실력
송중택 부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바둑을 두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의문은 그가 보여준 바둑판과 바둑알을 보면서 바로 풀렸다. 그 바둑판은 가로, 세로로 각각 그어진 열아홉 줄이 모두 돌출돼 있었다. 가로줄과 세로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바닥에 십자 형태의 홈이 패여 있는 바둑알을 얹으면 서로 맞물려 자연스럽게 고정이 된다. 바둑알도 검정 돌에는 주전자 뚜껑 같은 혹이 있는 반면 흰 돌에는 그런 것이 없어 손으로 만지면 흑백을 구별할 수 있다. 그가 보여준 시각장애인용 바둑판과 바둑알은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한국 제품은 아직 없다.
바둑알과 바둑판을 손으로 헤아린다 해도, 바둑의 변화무쌍한 수를 읽고 적절한 지점에 알을 놓으며 판을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송 부회장은 바둑을 두고 계가를 하고 복기까지 완벽하게 한다. 바둑 한판이 250수 안팎이면 끝나는데 200수까지는 머릿속으로 어렵지 않게 그린다. 시간만 넉넉하면 250수까지 계산할 수 있다. 헷갈릴 때면 손으로 바둑판을 한번 훑어 판세분석과 후속 수 결정을 할 수 있다. 손으로 더듬어 팻감을 찾고 차례로 패싸움을 한다. 누가 보더라도 놀라운 실력이지만 그는 "좀 열심히 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목진석 등 프로기사 20여명과도 붙어보았는데, 그가 넉 점을 깔고 한 대국에서 조훈현 9단은 "넉 점으로는 도저히 못 두겠다"며 그의 기력을 높이 샀다.
1년 전부터는 착점의 좌표를 입으로 불러주는 좌표바둑을 하고 있다. 눈으로 보지도, 손으로 더듬지도 않고 순전히 머릿속으로 판을 꿰야 한다. 그는 "프로기사들도 100점 정도까지는 보지 않고 둘 수 있다더라"며 "그들에게 좌표바둑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아직 반응이 없다"며 웃었다.
시력 잃어 상심하던 그에게 지금의 아내가 바둑판 선물
전남 고흥이 고향인 송 부회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농사일, 어업 등을 돕다가 마을 사람들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마침 조치훈이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어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던 때였다.
시력이 떨어진 것도 그 무렵이다. 열 일곱 살 때쯤 서울의 누나 집에 들렀다가 앞이 너무 안보여 안과를 찾았더니 녹내장이라고 했다. 병원을 다녀도 시력 회복이 어렵다는 말에 치료를 등한시 했더니 시력이 더 떨어졌다. 스무 살 때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는 시력이 거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양쪽 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심하던 그는 스물 두 살의 나이에 강원 춘천의 특수학교인 명진학교에 들어갔다. 고향이 싫어 집과 먼 곳에 가고 싶었다. 4년 뒤인 1986년에는 서울 종로구 신교동 국립서울맹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에 다녔는데 함께 어울리다 친해졌다. 아내가 그에게 시각장애인용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한 것은 90년이다. 그가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 바둑을 두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둑을 공부했다. 안마사 생활에서 번 수입의 절반 정도를 바둑 배우는데 쓸 정도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둑을 두자니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한판만 두어도 머리가 아팠다. 장애가 없는 상대편은, 한판 두는데 3시?가까이 걸리는 그와의 대국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게 5, 6년이 지났더니 실력이 늘고 시간도 단축됐다. 그럴수록 바둑에 더 재미가 붙었다.
어려서부터 가르친 딸, 아들도 바둑 고수
현재 국내에서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 중 50여명, 약시 가운데 수백 명이 바둑을 두는 것으로 송 부회장은 추정한다. 그 가운데, 시각장애인 바둑은 물론 장기에서도 출중했던 신상근씨가 몇 년 전 작고한 뒤 바둑에서는 송 부회장이 단연 발군이다.
그의 최대 라이벌은 일본의 나카마루.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국제시각장애인바둑대회에 출전해 나카무라와 대결한 결과 아홉줄 바둑에서 4승4패의 호각을 이뤘다. 아홉줄 바둑은 가로, 세로 각각 아홉줄로 줄여서 하는 축소바둑이다. 물론 열아홉줄 바둑에서는 송부회장이 전승을 했고 2002년부터 8년 연속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바둑 문화가 아직 척박한 프랑스의 피에르 오드와도 적수다. 그는 바둑을 배우기 위해 200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송 부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유러피언고페스티벌이다. 매년 유럽 각국을 순회하며 개최되는데 그는 그 중 2004년 폴란드 대회, 2005년 체코 대회에 참가했다. 두 대회 다 장애인 참가자는 그가 유일했다. 40~50개국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그 대회에서 송 부회장은 연속 40위권에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유럽 학생들은 바둑을 배우려는 욕구가 강했으며 특히 루마니아의 어린 학생들은 너무나 진지했다. 그들은 송 부회장에게 한 수 가르쳐달라고 매달렸고 그가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공책에 적고 바둑판의 포석을 사진으로 찍었다. 송 부회장은 "그 아이들이 그때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쯤 상당한 실력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대회에는 현재 고 3인 딸과 중 3인 아들도 함께 갔다. 송 부회장은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바둑을 가르쳤는데 둘 다 소질이 있었다. 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마 4단의 실력을 갖췄으나 그 뒤 공부에 더 치중했다. 현재 바둑연구생인 아들은 프로 진출을 위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바둑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석 점을 깔고 두어야 한다.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바둑 즐겨야
송 부회장의 시각장애인에게 바둑을 더 널리 보급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즐길 활동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바둑은 매우 좋은 여가가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각장애인이 청각장애인 등 다른 성격의 장애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바둑이다.
그는 전국장애인바둑협회 부회장 말고도 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바둑분과위원장 등으로 일하며 시각장애인에게 바둑을 가르치기 위해 뛰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가 많지 않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각장애인용 바둑판과 바둑알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이다. 전국의 맹학교, 시각장애인단체 등 20여 기관에 바둑판 20개씩만 보급해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 쓰는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은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이런 제품을 개발했고 그 결과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장애인 1,000명 정도가 바둑을 두고 있다. 송 부회장은 일본 바둑판을 변형, 대국이 끝나면 돌출된 줄이 저절로 가라앉는 바둑판을 개발했지만 아직 상품화를 못했다.
2004년 마흔 넷의 나이에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해 지난해 졸업한 것도 바둑을 이론적, 체계적으로 배워 시각장애인에게 더 잘 가르치고 싶어서다.
그는 3년 전부터 서울맹학교에서 방과후 활동으로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다른 곳에서도 배우겠다고 하지만 멀리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 다 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둑 보급이라는 자신의 꿈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생각이다. 장애인단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협조를 요청하고 장애인올림픽 종목으로도 채택되도록 뛸 각오가 돼 있다. 그는 "바둑판 앞에 앉으면 지금도 마음이 설렌다"며 "시각장애인이 바둑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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