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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음식 - 당신은 생애 마지막 식사, 누구와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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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음식 - 당신은 생애 마지막 식사, 누구와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입력
2010.12.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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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폭행, 집기 던지기, 자학 등등.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푸는 스타일입니다. 다음날은 기억을 못합니다. 집에 들어오기 싫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요. 아이들에게 상처 줄까 봐 숨기고 살았습니다. 막내 수능이 끝나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젠 힘들고 지쳤다고, 막내 입시 발표 나면 집을 나가겠다고요. 남편은 놀랐는지 노력할 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하네요. 지금은 저희 부부의 가장 큰 고비인 것 같습니다. 생애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요? 남편이겠지요. 가장 미운 사람이니까요. 그 미운 사람이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가장 그립습니다.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던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서울 상일동 이모씨)

“이것이 내 생애의 마지막 식사라면 누구와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평범한 이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결혼생활 27년 된 주부 이씨는 가장 미워하는 남편의 가장 사랑했던 시절을 최후의 식탁에 초대했다. 아플 때면 먹었던 어머니의 죽, 동생이 죽기 전 먹었던 육회를 떠올린 이들도 있다. 롯데호텔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진행한 만찬 초청 이벤트에 응모된 사연들이다. 라는 책에서 착안해 기억에 남는 식사 사연을 모았다. 롯데호텔은 20일까지 접수된 1,500여명 중 50명의 사연을 뽑아 24일 저녁 7개코스 만찬을 제공한다.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만찬’이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2년째 임용고시에 낙방한 뒤 ‘아무도 연락하지 말라’는 문자를 날리고 세상과 단절한 김모씨에게 아구찜은 좌절을 극복하게 한 아버지의 격려였다. ‘혼자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던 어느 날 짧은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역이니 나와라.” 전화를 받지 않자 무작정 상경하신 아빠. 무뚝뚝한 아빠는 만나자마자 아무 말 없이 한 번 안아주시고는 “밥 먹자”. 생각이 없다고 하자 그냥 끌고 가신 아구찜집. 매콤한 맛에 눈물 콧물 나오고 아빠가 주는 소주 한잔 두잔 받아먹다 보니 어느 새 눈물도 같이 삼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구들에게,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세상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내년에 또 다시 도전할 힘을 준 내 생애 평생 잊지 못할 식사였습니다.’

자취생활을 했던 회사원 이모씨가 한겨울에 먹은 쑥국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택배는 던져져 엄마의 음식들도 엉망이 되어있었어요. 밤 늦게 그 음식들을 냉장고에 집어 넣으면서 모든 게 궁상으로 느껴졌지요. 대충 집어넣고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헌데 주말이 되어 냉장고를 열어 하나하나 살펴보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봄에 직접 캔 쑥으로 끓인 쑥국을 한 번 먹을 만큼 포장해서 납작하게 얼린 것, 깨끗하게 손질된 조기, 굽기만 하면 되는 양념돼지, 청국장, 멸치볶음 등등. 밥상은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수성찬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요. 겨울이었지만 쑥 향기는 그대로 살아있었던 기억이.’

식탁은 일평생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주모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만난 남편의 프러포즈를 이야기했다. ‘결혼 직전 남편은 대학생이었고 저는 갑상선암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투병 중이었습니다. 둘 다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데이트라는 건 같이 병원 다닌 것밖에 기억에 없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경양식집에 데리고 가더군요. 그 날이 프러포즈를 받은 날입니다. 분위기는 어두침침하고 호프집을 연상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날 먹었던 찹스테이크의 맛은 갑상선 이상으로 늘 피곤하던 제 몸을 날아갈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남편이 음식과 반지 살 돈을 벌기 위해 새벽 신문배달을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박모씨는 “생애 마지막 음식은 세상의 산해진미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이어야 한다”며 아플 때마다 일어날 힘을 준 어머니의 죽을 떠올렸다. 정모씨는 첫 아이를 낳은 뒤 어릴 때 여읜 부모 대신 “그동안 받지 못한 부모 사랑 이제 넘치도록 주겠다”며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눈물 범벅이 돼 세 그릇이나 먹어 치운 미역국을 최고의 만찬으로 꼽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김치찌개 이상이라면 사치로만 알고 산 부모님께 생전 최고의 저녁을 선사하고 싶다는 사연을 보내왔다.

1년 전 젊은 나이에 사업을 하다 어려워져 인생을 끝내겠다는 모진 결심을 했던 김모씨는 정말 자기 생애 마지막 만찬이 될 뻔했던 식사를 떠올렸다. 호텔에서 근사한 요리를 먹고 마지막 차를 마시던 중 옆자리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들이 앉은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신모씨는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먹고 싶어하던 육회에 사무치는 사연이 있다. 어머니가 입에 대기도 전에 동생이 먹어 치워 원망을 했는데 그 동생마저 몇 달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우 롯데호텔서울 총주방장은 사연 속 메뉴를 골라 한우육회, 홍합매생이죽, 바닷가재볶음, 양갈비 스테이크, 야채비빔밥과 송이두부탕, 디저트, 차로 최고의 만찬을 구성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만찬에 온 모든 이들에게 생애에 기억이 남을 만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책·영화서 그려진 '기억할만한 식사'

롯데호텔 크리스마스 이벤트의 모티프가 된 (웅진지식하우스 발행)는 독일 함부르크 호스피스시설에서 요리사로 일한 루프레히트 슈미트의 실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원하는 것이 건강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슈미트는 환자들로부터 원하는 식사를 주문 받았다. 희망 메뉴는 고단한 일을 끝내고 토요일 휴식의 단맛을 준 순무 무스, 첫 데이트 때 즐겼던 디저트 같은 것이었다. 인생의 말년에 떠오르는 음식은 희귀한 진미가 아니라 아름다운 일상을 추억할 수 있는 밥상이었던 것이다.

쥐가 천재적인 요리사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에서도 냉정하기 짝이 없는 요리비평가에게 충격적 감동을 안겨준 것은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추억이었다. 쥐가 요리해 제공한 라따뚜이는 소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릴 적 고향의 맛이 담겨 있었고, 그 어떤 고급요리보다 그를 만족시켰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1987)에서 주인공 바베트가 마을 주민을 위해 큰 돈을 들여 마련한 최상급 만찬은 반목하고 적대시하던 주민들이 인생의 충만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정성껏 준비된 음식은 신뢰와 사랑을 회복시키는 주문이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음식은 그 무엇보다 강한 추억이고 즐거움이다. 어려운 고비를 넘겨주는 해결사이고 인간관계를 잇는 끈이 된다. 인생에 의미 있는 음식이 그래서 나온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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