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채권단이 내놓은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 중재안을 거부하고 소송전에 돌입했다. 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 예치해 놓은 1조2,000억원을 '브릿지론'이라고 밝히면서 대출계약서 제출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인수자금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22일 채권단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신청의 취지를'양해각서(MOU) 해지금지'에서 사실상'MOU 해지무효'로 변경했다. 법원 판결에 앞서 채권단이 이미 MOU를 해지한데다 주식매매계약까지 거부하면서 해지금지 가처분신청의 의미가 없어지자, MOU 해지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꾼 것. 현대그룹과 채권단이 맺은 MOU가 여전히 유효하며 채권단의 MOU 해지 결정은 부당하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해달라는 의미다.
만약 법원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줄 경우 채권단의 MOU 해지 결정이 무효화되고, 현대자동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넘겨 매각협상을 진행하려던 채권단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법원은 24일 2차 심리를 진행한 후 최종 판결을 한다는 계획이다.
채권단도 이날 운영위원회 실무자 회의를 열고, 가처분 심리일정을 고려해 향후 일정을 논의키로 했다. 채권단은 당초 다음주에 주주협의회를 열어 현대자동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할 계획이었지만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는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날 열린 1차 심리에서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이 나티시스은행 자금을 브릿지론이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브릿지론은 일종의 긴급자금 대출로, 인수ㆍ합병(M&A) 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잠시 빌린 후 일정기간 내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를 모집해 이를 갚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 사장은 "브릿지론은 대형 글로벌 M&A에서 널리 행해지는 것"이라며 "자산을 담보로 하거나 자산을 활용한 파생상품을 만들거나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무보증 무담보 대출금인 만큼 브릿지론이라도 인수자금의 문제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대리인은 "나티시스의 동의를 받으려고 협의 중인데 가처분에서는 시간이 촉박해 어렵지만 본안 소송에서 재판부에 한정해 대출계약서 제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당초 대출금이 브릿지론이거나 풋ㆍ백옵션이 포함됐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며 "현대그룹이 브릿지론이라고 밝힌 것은 대출자금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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