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빨리 치워, 얼굴 나오면 안 된다니까. 사돈 식구들은 우리가 서초동 산다고 해서 잘 사는 줄로만 알고 있단 말이야."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3동 산160번지 일대 '강남 속 판자촌' 산청마을에서 만난 김미자(64·가명)씨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아있었다. 지난달 28일 새벽 방화로 가족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잃은 채 16㎡ 남짓한 단층 조립식 건물인 마을 노인정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한탄스럽고 짜증난다는 말투였다.
한숨만 쉬던 그가 노인정을 나서 50m 가량 떨어진 비닐하우스로 구부정한 걸음을 재촉했다. 전체 54가구 가운데 화마(火魔)가 보금자리를 앗아간 21가구 이재민 52명이 임시 거처로 쓰려고 만든 약 80㎡ 규모의 비닐하우스 앞은 이를 지키려는 주민과 부수려는 서초구청 직원들간 승강이가 이미 한창이었다.
"(직원들 온 게) 오늘만 두 번째야. 살 곳 없어서 비닐하우스라도 치고 겨울 나겠다는데, 왜들 못살게 굴어. 무허가 건물이라고 못 짓게만 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야." 뒤늦게 합류한 김씨의 목소리가 서리풀공원 한쪽 구석 언덕비탈에 위치한 마을 전체에 울리자, 공원을 배경으로 늘어선 인근 고급빌라 주민 서너 명은 구경거리인양 창문으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2만3,220㎡ 규모의 산청마을은 1960년대 말부터 일용직 근로자와 사업실패자 가족 등이 하나 둘씩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을 뒤쪽은 공원 끝자락 비탈에 감춰져 있고, 마을 앞은 고급 빌라와 아파트에 가려져 있어 인근 주민들조차 잘 모를 정도다. 존재하되 드러나지 않는 역설의 공간이다.
김씨는 69년부터 이 곳에서 살았다. 지금의 산청마을 근처에 가족들이 모여 조그맣게 운영하던 편물공장이 어려워지면서 오빠네와 언니네는 모두 떠났지만 당시 큰 아들(40)을 막 얻은 김씨 부부는 가까운 산청마을을 임시 보금자리로 택했다.
5년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사하려던 부부의 계획은 이내 수포로 돌아갔다. 김씨 부부와 막내아들(33) 부부, 다섯 살짜리 손자와 10개월 된 손녀까지 모두 3대가 산청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마을에 들어온 후 김씨 부부는 행상과 막노동 가사도우미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설상가상 조그만 가게를 하려고 애지중지 모은 1,000만원은 80년 사기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포자기에 빠지기도 했다.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꾸리던 남편은 10년 전부터는 빌딩 경비 일을 하고 있다. 김씨도 힘을 보탤 요량으로 빌딩청소 일에 나섰지만 부부가 한달 움켜쥐는 월급은 합쳐봐야 200만원이 되지 않았다. 생활비와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결국 김씨 가족은 어느새 주민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식구가 산청마을에 사는 처지가 돼버렸다. 김씨는 "마을에 함께 사는 막내아들도 빌딩 경비 일을 하고 있다"며 "자식들만큼은 절대 이 곳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먹고 살기 바빠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못 쓰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울먹였다.
특히 김씨는 산청마을에 살면서 자식들 혼사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부모가 무허가 판자촌에 산다고 하면 행여 혼사길이 막힐까 봐 세 아들이 각자 신붓감을 데리고 올 때마다 멀리 사는 친척집에서 첫 대면을 했다. 사돈을 집에 초대하는 것은 꿈 조차 꾸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사돈들은 그냥 우리가 '서초동'에 사는 줄로만 안다"며 "사돈들은 우리 집이 잘 사는 것 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사는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산청마을이 인근 고급 빌라촌처럼 개발될 경우 주거권을 얻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선에 대해서는 극도의 서운함을 나타냈다.
지난달 화재는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단란하고 화목했던 김씨 가족에게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화재 발화지점에서 한 집 건너 위치한 김씨네 집은 불길이 삽시간에 번져 모든 게 다 타버렸다. 비닐합판과 목재 등 불에 타기 쉬운 소재들로 지어진 무허가 주택들이라 불길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당장 살 집이 없어진 김씨 가족은 아쉬운 대로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주변 이웃들의 집에 남편 따로, 막내아들 따로 얹혀 살고 있다. 며느리와 손주들은 충남 당진군의 며느리 친정에 내려갔다. 순식간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생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 가족 이외 다른 이재민들도 현재 화재피해를 입지 않은 이웃집에 모두 분산돼 살고 있다.
김씨는 화재 당시 내복차림에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남편과 아들이 자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오기에도 짧은 시간이라 외투 하나, 숟가락 한 개 건진 게 하나도 없다니까. 매일 손주들이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사돈댁에 갈 수도 없는 처지라…." 말을 마치기 전에 그의 눈엔 눈물이 맺혔다. 그리곤 이웃에게 얻어 입은 외투자락을 여몄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 산청마을 화재 보상은
산청마을 방화사건 한 달이 다 돼가도록 실질적인 이재민 구호대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과 서초구간 입장 차이 때문이다. 주민들은 불에 탄 건축물 18개 동의 원상복구를 요구한 반면, 구는 마을이 위치한 서초3동 산160번지 일대가 서리풀공원에 속한 도시공원지역으로 관련 법에 의해 무허가 건축물을 원상복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도시공원및녹지등에관한법률 제24조에 따르면 도시공원에서는 건축물대장에 등재된 기존 건축물에 한해 증ㆍ개축, 대(大)수선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구는 화재가 발생한 건물의 토지에 내년 봄 수목을 심어 산림으로 보존한다는 계획이다. 대신 구가 보유하고 있는 36㎡ 규모의 양재동 보금자리주택 6가구를 최대 3년 임대하고, 이재민들이 소정의 심사를 거쳐 LH공사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재민들은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바라고 있다. 제유순 산청마을 자치회장은 "일정기간 주택을 임대해준다고 하지만 임대주택에서 사는 동안 서울에서 집 구할 돈을 모으지 못하면 노숙자가 되라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서초구는 "내년부터 취약계층 임대주택 거주기간이 10년으로 연장되는 만큼 이재민들이 혜택을 보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이재민들이 임시로 머물 숙소에 대한 대책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이웃 집을 전전하는 이재민들이 자력으로 세운 비닐하우스를 짓는 족족 철거하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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