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65)씨는 폐암으로 남편을 잃은 뒤,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건강검진을 받았다.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조씨의 오른쪽 폐에도 2.5㎝의 혹이 발견됐고, 폐암이 의심돼 조직검사를 했다. 조씨는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과 재발을 반복하며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던 남편이 떠올라 차라리 수술 받지 않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주변에 전이가 없는 1기 폐암이라 가슴을 열지 않고도 흉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다는 병원측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전상훈 분당서울대병원 폐센터 교수가 직접 나서 “우리 병원에서 1기 폐암 수술을 받은 환자 10명 중 9명이 완치됐다”며 조씨를 설득했다. 이에 조씨는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결심했다.
1기 폐암 생존율 88%, 세계 최고 수준
며칠 뒤 전 교수는 수술대에 누운 조씨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쪽 3곳을 조그맣게 칼로 절개하고 카메라와 수술기구를 넣었다. 모니터를 통해 폐와 늑막을 관찰하며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다. 전이가 없음을 확인한 전 교수는 종양이 있는 오른쪽 위쪽 폐엽은 물론 주변 림프절까지 모두 제거했다. 수술은 2시간 만에 끝났고 조씨는 수술 닷새 후 퇴원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씨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제 암은 불치병이 아니다. 암 환자 2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생존할 정도로 치료 성적이 좋아졌다. 하지만 폐암은 여전히 생존율이 15%에 불과할 정도로 ‘독한 암’의 악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초기에 발견되는 비율이 낮아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다음에야 진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폐암은 초기에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지 않으면 대부분 병이 상당히 악화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폐암도 초기에만 발견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1기 폐암은 암세포가 혈관이나 림프관을 따라 퍼지지 않고, 암세포가 폐에 생긴 혹 안에만 국한된 경우를 말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의 1기 폐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87.9%에 이른다. 1기 폐암 치료율이 우리나라는 70%, 일본도 80% 수준인 것에 비하면 경이로운 수치다. 1기 폐암도 중증도에 따라 1A와 1B로 구분하는데 1A 폐암의 5년 생존율은 92.9%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에는 일본흉부외과학회에서 이같이 높은 치료율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 국제학계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 교수는 “전체 폐암의 치료성적이 좋지 않지만, 조기 진단만 한다면 얼마든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며 “분당서울대병원은 건강검진센터에서 발견하는 초기 폐암 진단비율이 높고, 여러 진료과 전문의가 유기적으로 협진해 우수한 치료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폐암의 90% 흉강경으로 수술
초기 폐암의 생존율이 높아진 것은 흉강경수술이 널리 도입된 덕분이다. 흉강경수술은 가슴을 크게 열고 하는 기존 개흉술과 달리, 겨드랑이 아래쪽 3곳을 절개한 뒤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넣고 비디오를 보면서 수술하는 방식이다.
흉강경수술은 그 동안 흉부의 양성질환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만 제한적으로 이용됐다.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고, 수술 기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복강경수술 기법이 크게 발전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특히 분당서울대병원이 초기 폐암은 흉강경수술이 생존율과 합병증, 사망률 등에서 기존 개흉술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적용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개흉술로 수술하면 환자가 중환자실과 병실에서 보통 7일 이상 입원해야 하지만, 흉강경수술은 수술 후 4~5일 만에 퇴원하고 2주 후에는 일상생활을 다시 할 수 있다. 수술 뒤 폐기능 회복을 도우려고 늑막에 흉관을 넣는데, 개흉술보다 흉관을 넣어둬야 하는 기간도 짧다. 회복이 빠른 만큼 항암치료가 필요하면 더 빨리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환자 체력이나 면역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된다. 전 교수는 “유착이 심하거나 림프절 전이가 의심되지 않으면 1기 폐암은 대부분 흉강경수술을 시행한다”며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2003년 개원과 함께 폐암 흉강경수술을 도입한 분당서울대병원 폐센터는 2005년에는 1기 폐암 환자의 16%만 흉강경으로 수술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이를 90%까지 늘렸다.
폐암, 조기 발견하면 90%까지 생존
건강 검진이 일상화되면서 기관지폐포 폐암을 발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기관지폐포 폐암은 암이 덩어리를 형성하기 전 단계로 흉부 X선으로는 희미하게만 볼 수 있다.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 예전에는 기관지폐포 폐암 단계에서 발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단 폐암 진단이 내려지면 초기라 하더라도 종양이 있는 폐엽을 모두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기관지폐포 폐암은 흉강경수술로 하면 극히 일부의 폐만 쐐기모양으로 잘라내면 돼 수술 부담이 훨씬 적다. 최근에는 폐암의 5~10% 정도가 기관지폐포 폐암 단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기과지폐포 폐암을 수술 받은 환자는 단 한 명도 재발 없이 완치됐다.
초기에 폐암을 진단하려면 일반 흉부 X선 사진으로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저선량 흉부 CT를 찍는 것이 좋다. 이춘택 호흡기내과 교수는 “20년 이상 흡연했거나, 가족 중에 폐암환자가 있거나, 폐 건강에 나쁜 특수 환경에 종사하고 있다면, 1~2년에 한 번 저선량 흉부 CT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특히 60세가 넘으면 일반검진뿐만 아니라 저선량 흉부CT를 추가로 찍어야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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