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선생님은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가시고, 정호승 선배와 나는 명동에 남았다. 나는 명동이라는 것에 즐거웠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나는 선배의 새 시집 을 읽으며 왔다. 그 시집 속에도 명동이 나온다. 휴지와 같은 서울에서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이 '명동성당'이라 했다.
나는 늘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가는 서울에 대해 불편했는데 가끔씩 서울의 다른 모습을 볼 때가 있어 놀란다. 노신사가 가득 찬 종로의 지하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이 2,000원이라는 것에 서울을 다시 보았다. 오늘도 그랬다. 복잡한 명동 길거리에서 한 노인이 쪼그리고 앉아서 유유히 설탕을 녹여 '또뽑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선배와 나는 명동에서 서울역까지 걸었다. 서울사람들이, 서울의 빠른 시간이 우리 곁을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갔지만, 우리는 서울에서는 저속 위반 속도인 서정시인의 걸음걸이로 걸었다. 서울에 부정적인 나와는 달리, 정호승 선배는 젊어서부터 서울에는 예수가 산다고 믿고 노래했다.
그래서인지 응달진 길거리의 깔창장수를 지나치지 못하고 몇 개를 신발에 맞춰보며 골랐다. 시인의 서울 같지 못한 속도에 깔창장수가 화가 났는지 폭언으로 시인을 밀쳐내 쫓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서울에 예수가 있다는 시인의 예언을 믿지 못하는 서울과 서울사람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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