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역사드라마들도 점차 전문가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사실성과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데 SBS의 이라는 드라마는 최소한 사실에 기초를 해야 할 부분마저 소홀히 다루고 있다. 정치인을 희화화하거나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창작의 영역이므로 시비를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국 정치를 대상으로 한 방송이라면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과연 관계자들이 정치에 관심과 기본지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현실과 괴리, 비전도 없어
지난 주 방송에서 대선후보 토론 중 실시간으로 후보자들의 인기도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여론조사를 마치 홈쇼핑에서 주문량을 표시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아마 내후년 대선 토론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떠올리곤 방송사에 즉각적인 여론 반응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장면은 여론조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설정이다.
여론조사는 자발적 응답이 아니라 조사대상으로 '선택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론조사에서 무작위 표본추출이 원칙이라는 것을 안다면 방송처럼 분 단위 여론변화 추적은 터무니없는 설정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하다. 하루 밤 사이에 수행한 여론조사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인데 분 단위 여론조사 장면은 어이가 없다.
드라마에서 강태산은 대선에 패한 후 이전 그대로 현역의원이자 당대표로 등장한다. 이 또한 현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다.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대선출마자는 현역의원인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정당에서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다. 드라마 관계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드라마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치 않다고 우기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방송 전부터 누구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인지 정치권이 예민했지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의 행동이 비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권 도전에 성공한 주인공 서혜림이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나로서는 천만다행이다. 서혜림은 대안 정치인이 아니라 아마추어 정치인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능력과 정책이 아니라 이미지 정치의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서혜림이 주장하는 모두를 위한 정치라는 발상이 바로 포퓰리즘의 첫걸음이다. 서혜림에게는 옳고 그름만이 있을 뿐, 서로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다.
서혜림이 국민들에게 각인된 계기는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을 구출하거나 잠수함 사고로 수장(水葬) 위기에 놓인 군인들을 구해내는 사건을 통해서이다. 애국심이 고취되는 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적이기는 해도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자질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위기 때 국민들이 지도자나 영웅에게 보내는 지지는 강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제작 의도에서 밝힌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모습으로 대통령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드라마 속에서 서혜림의 정체성은 대선 홍보 동영상이 보여준 감성적인 과거 행적뿐이었다. 비전을 보여주는 지도자의 모습은 없었다.
그릇된 정치인상 심을 우려
대선 토론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바누아투 공화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아도 서혜림이 정치적 균형 감각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GDP가 전세계 233개국 중 207위인 국가의 주관적 행복도가 높다는 것이 얼마나 귀감이 되는가? 서혜림은 바누아투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이라면 다른 기관이 유사한 주제로 조사한 결과를 참고했어야 했다. 뉴스위크가 뽑은 핀란드 스위스 스웨덴 순서의 북유럽 국가들에서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이 시사점이 더 크다. 이 드라마가 국민들에게 바람직한 정치인의 모습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는 것 같아 걱정된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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