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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에 숨어있는 진화심리학/ 스모키 눈매 앵두 입술 꿀 피부…"난 우월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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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에 숨어있는 진화심리학/ 스모키 눈매 앵두 입술 꿀 피부…"난 우월한 여자"

입력
2010.12.2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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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가 코앞이다. 모임에 나가기 전, 여자들은 화장을 한다. 파운데이션을 두드리고, 아이섀도를 칠하고, 립스틱을 바른다. 그리곤 거울을 본다. 얼마나 예뻐졌나 하고.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도 검댕을 사용해 화장을 한 기록이 있다. 7만여 년 전 원시인류 네안데르탈인들도 색소를 피부에 발랐다는 증거가 최근 학계에 보고됐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인간은 화장을 해왔다는 얘기다. 왜 그랬을까. 진화심리학에 물었다.

콘트라스트를 높여라

송년 모임이나 크리스마스 파티에 잘 어울리는 메이크업으로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스모키 화장을 추천한다. 검은색이나 붉은 와인색, 군청색처럼 어둡고 진한 아이섀도를 눈 주위에 발라 눈매를 한껏 강조하는 화장법이다. 김연아 선수를 비롯해 보아, 이효리,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 인기 여성 가수들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면서 유행을 타고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원래 명암(콘트라스트)이 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두 눈과 입술 주위가 다른 데보다 좀더 어둡다. 멀리서 보면 어두운 부위가 역삼각형 형태로 나타나는 게 전형적인 사람 얼굴의 콘트라스트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얼굴의 콘트라스트가 높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더 크다는 소리다. 오래 전부터 그랬다. 실제로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얼굴 사진을 모양이나 크기는 변화시키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콘트라스트만 높이면 여자 얼굴에 가까워 보이고, 반대로 낮추면 남자 얼굴 같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나온 적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스모키 화장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는다. 스모키 화장은 눈 주위를 실제보다 더 어둡게 과장한다. 콘트라스트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아이섀도를 칠한 다음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눈썹에 마스카라까지 바르면 주위 피부 색깔과 차이가 더 뚜렷해진다.

전중환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는 “얼굴에서 콘트라스트를 높이는 것은 결국 여성성을 강화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진화해왔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눈 화장을 짙게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는 소리다.

얼굴에서 콘트라스트가 나타나는 이유는 생리학적으론 호르몬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여성이 나이가 들수록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줄면 콘트라스트도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눈 화장이 점점 짙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난 우수하다, 붉으니까

출근 시간에 늦은 아침, 정성스럽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 화장까지 할 시간이 없을 때 여성들은 대충 립스틱이라도 바른다. 밋밋했던 입술이 립스틱의 도움으로 선홍 빛이 되면 살짝 화장한 듯한 분위기도 난다.

여성의 입술은 보통 때보다 배란기가 되면 더 붉어진다. 이 역시 호르몬의 영향이다. 배란기 때 특히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돼 피부 바로 아래에 있는 혈관에서 혈액의 흐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립스틱을 발라 입술을 더 붉게 만드는 게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진화해온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남성들이 빨간 립스틱에 매료되는 것도 임신해서 자신의 2세를 낳을 수 있는 가임 여성이라는 점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셈이다.

진화심리학에선 얼굴의 콘트라스트와 입술의 붉기를 ‘정직한 신호(honest signal)’라고 말한다. 유전적 자질을 신빙성 있게 보여주는 증표라는 뜻이다. 에스트로겐은 생리학적으로 상당히 ‘비싼’ 호르몬이다. 면역체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생체물질을 자기가 활동하는데 가져다 쓴다.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많으면 면역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전 교수는 “콘트라스트가 높고 입술이 붉을수록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된다는 뜻”이라며 “비싼 호르몬을 많이 감당할 수 있다면 유전적 자질이 우수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이섀도나 립스틱이 인류 진화과정에서 여성들이 유전적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티 없이 균일하게

파운데이션이나 트윈케이크는 피부를 뽀얗고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잡티 없는 ‘우유피부’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성의 피부 상태에 민감하다. 얼굴 사진 일부분을 보여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부 상태로만 사진 속 인물의 나이를 얼추 비슷하게 짐작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진화심리학에서 우유피부는 건강을 의미한다. 지금 같은 의료혜택이 없던 옛날 전염병에 걸리거나 병균에 감염되면 대번에 피부부터 나빠졌다. 여성들이 피부 톤을 균일하게 하는 화장을 선호해온 것도 자신이 건강함을 드러내려는 본능 때문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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