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동네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한 정거장 거리의 대로변에 대형 목욕장과 찜질방, 헬스시설 등을 갖춘 24시간 불가마 사우나가 들어서면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설과 서비스가 열악했다. 기름 보일러가 수시로 탈이 나 주인 아저씨는 낡은 보일러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파이프에서 물이 줄줄 새는 바람에 샤워기를 틀어도 늙은 염소 오줌발처럼 힘이 없었다. 이발과 때밀이, 청소 등을 도맡았던 70대 할아버지는 "500만원이나 내고 들어왔는데 장사가 안 된다"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손님만 보면 하소연이었다.
■ 3개월 전에는 200가구가 모여 있는 우리 블록의 유일한 동네 슈퍼가 문을 닫았다. 부부가 과자와 음료수, 담배, 인스턴트 식품 따위를 팔았는데, 날이 갈수록 손님이 줄어 임대료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라면 따위를 사러 들르면 부부가 막걸리를 걸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일을 작파하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까지 불러들여 거나하게 술판을 벌였다. 자동차로 10~15분 거리에 대형 할인매장이 세 개나 있어도 잔 손님들 상대로 버텼지만, 최근 5분 거리에 기업형 슈퍼(SSM)가 들어서자 손을 들고 말았다.
■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만족을 추구한다. 우리가 질 좋고 싼 제품을 구입해서 소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니 영세 자영업자가 거대 자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자본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소비자 편익에 부합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 소비만 존재하는 시장은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런 시장은 거대 자본의 우월적 힘을 더욱 키우고 골목상권을 무너뜨리게 된다. 결국 독과점 상태를 부르고 시장 가격을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 요즘 합리적 소비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게 윤리적 소비이다. 제3세계 아동 노동으로 만들어진 커피와 의류 등 인간과 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을 거부하는 공정무역, 여행국가의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고 현지인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힘쓰는 책임여행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자기 편익만 추구하는 이기적 소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영세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 상품을 선택하는 이타적 소비를 말한다. 유전자조작 밀 대신 우리 밀을, 미국산 쇠고기 대신 한우를, SSM 대신 동네 슈퍼를 선택하자는 말인데,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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