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호강했다.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아이다'는 세련된 무대와 화려한 의상, 소품의 이색적인 활용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상체를 드러낸 채 활을 쏘는 장수들과 물동이를 머리에 인 처녀들의 군무는 이국의 향기를 한껏 풍겼다. 과연 무대 설치에만 2주가 걸린다는 대작다웠다.
무대가 열리면 현대 박물관의 이집트 관. 전시 모형의 하나인 여왕 암네리스는 해설자가 되어 고대 이집트로 관객들을 이끈다. 이집트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에 살던 누비아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이 배경이다. 이야기는 누비아 공주 아이다(옥주현)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김우형),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정선아)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열강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인의 설움과 저항을 담아낸다.
가장 돋보이는 건 무대미술이다. 당시를 생생하게 재현하려 하거나, 구체적인 소품들로 1차원적 구성을 하지 않았다. 감옥은 벌집처럼 육면체를 그린 평면 그림으로 표현하고, 옷장은 색색깔로 도식화하는 식이다. 그 덕에 21세기 무대 위에 그린 고대 이집트는 진부하지 않다. 엘튼 존이 작곡한 팝 음악도 현대성을 강조한다.
각 인물에게 부여한 색의 극명한 대립도 흥미로웠다. 가령 권력에 눈이 먼 라다메스의 아버지 조세르(문종원)는 검은 옷에 검은 조명을 받는다. 열정적이고 호전적인 라다메스는 붉은 옷, 아이다는 태양빛을 받아 넉넉하고 지혜로운 인상을 준다. 1분에 평균 2.6회의 큐 싸인이 난다는 이 작품의 400회가량 되는 조명의 변화는 마술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라이선스 원작 덕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되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졌다.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모호했고, 죽음도 무릅쓸 만큼 사랑이 깊어질 이유도 없어 보였다. 과대 포장한 듯, 지배관계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초연에 이어 다시 아이다를 맡은 옥주현은 다른 출연진에 비해 성량이 작고 가사 전달력이 약해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이었다. 김우형의 연기도 강한 인상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건 연출 및 음악총감독을 맡은 박칼린이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이 작은 모니터 속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또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박칼린은 이 달 말까지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는다.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내년 3월 27일까지. (02)577-1987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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