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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또 하나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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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또 하나의 사과

입력
2010.12.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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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本州)의 아오모리(靑森)는 사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일본에 유통되는 사과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사과 파이, 사과 과자, 사과 주스 등 사과 관련 상품만도 700여 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합격사과'이다.

1991년 아오모리현에 태풍이 닥쳐 수확을 목전에 둔 사과의 90%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상품가치가 있는 사과는 겨우 10 %만 남은 것이다. 이때 이 남은 사과를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 즉 합격사과로 명명하여 팔기 시작했고 이 사과가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이 사과는 일반적인 가격의 10배 이상 비싸게 팔려 태풍으로 인한 90%의 손실을 채우고도 남았다. 이 유명한 사과는 수능철이면 우리나라에서도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연말이 더욱 추운 이웃들

이 합격사과의 고장에서 18일 라파엘 클리닉을 돕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라파엘 클리닉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의료기관이다. 정상적으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아픈 몸을 무료로 치료받는다. 그러한 기관을 돕는 행사가 국내도 아니고 일본의 아오모리에서 열린 것은 주최 측의 저간의 사정이 있겠지만, 하필이면 합격사과의 고장인 아오모리인 것이 인상 깊었다.

아오모리의 눈 덮인 사과밭에는 나무마다 따지 않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 붙어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까치밥, 일본이니 혹시 까마귀밥 같은 것이 아닐까. 농부들은 열매를 쪼아 먹는 새들을 온 힘을 다해 쫓아내다가도 겨울이면 또 먹이가 부족한 새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겨둔다. 그것은 공생의 마음이고,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인정해주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사람과 새가 그러할 진데,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떠할 것인가.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는 120만 명이 넘고 이 중에서 15% 가량이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나은 돈벌이를 찾아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이 법이 정한 기한 내에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 머물며 불법노동자가 되는 것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한 사회 가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불법체류의 멍에는 아마도 그들 자신에게 가장 가혹할 것이다. 신문기사에서는 심심찮게 불법체류자들이 악덕 고용주에게 당하는 피해 사례들이 보도되기도 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혹은 포기한 채 이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해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6년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던 네팔인 찬드라의 이야기는 책으로까지 나왔다.

더불어 사는 마음으로

연말이다. 누구나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운 때이다. 고향을 먼 곳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내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추운 연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문득 생각하게 된다.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아오모리 합격사과는 그야말로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가지를 움켜쥐었을 것이다. 사람으로 바꿔 생각하면 눈물겨운 생명력이다. 놓고 싶지 않았겠는가. 떨어지는 것들과 함께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겠는가. 그래도 붙들고 있어야만 했으니 놓지 않고 잡고 있지 않았겠는가.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순간들, 그 순간들을 버텨내고 이겨내야 하는 것은 우리네 일만은 아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이미 우리와 하나가 되어있는 모든 사람들의 일이다. 연말 추운 곳에서 더욱 춥게 웅크리고 있을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주목 받지 못하고, 오히려 주목 당하는 것이 더욱 두려운 사람들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비록 밝은 곳에 있지 못해도, 그들 또한 우리의 이웃이고 그 중에서도 너무 추운 이웃이니.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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