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효근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퀭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니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 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 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
● 나이만큼 이어온 긴 호흡. 그 길이 일자로 펼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돌겠네. 더러는 한숨, 더러는 재채기, 자지러지던 웃음, 스타카토로 끊기던 들숨과 길게 늘어지던 날숨의 편곡인 울음, 음 높낮이로 감정의 기승전결 다 담는 감탄사, 수시로 내뱉은 무수한 말들 그 많은 것들의 길을 대신 걸어주며, 긴긴 숨 여기까지 와 잠 못 이루고 있네.
지나치는 지하철 전동차 속, 사람들로 꽉 찬 칸과 어이없게도 텅 빈 칸 바라보며 삶을 생각해본 적 있지. 우리 삶이 옆 칸도 못 보는 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켜서 보거나 떨어져서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도 하지.
아파트를 벗어나 맘 경계를 허물었구나. 사랑과 싸움, 고해와 극락, 세속과 사원, 층층이 다 한 마음 속에 있는 마음 아파트임을, 한 몸임을 보았구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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