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디지털TV, 자동차 등 수출 효자 상품으로 각광받는 제품의 핵심 구성 요소인 시스템 반도체의 국산화 율이 심각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조정식의원(민주당)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휴대폰에 들어가는 모뎁 칩(음성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이를 다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바꾸는 장치)과 RF칩(휴대폰과 기지국 사이에 송수신이 가능하도록 신호를 증폭시키는 장치)의 국산화 율은 각각 0%, 12%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국내 기업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이들 시스템 반도체와 관련해 미국 퀄컴사에 준 로열티가 3억1,600만 달러(약 3,422억 원)에 달했다.
뿐만 아니다. 게임, 음악, 비디오 파일 등을 작동하도록 하는 AP(멀티미디어)도 73%를 수입해서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폰 열풍이 불고 국산 스마트 폰이 해외 시장에서도 선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 상황을 꼭 즐길 일 만은 아니다. 수출 효자 제품으로 꼽히는 휴대폰이지만 몸통만 국산일 뿐 정작 부가 가치가 높은 '두뇌'는 수입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휴대폰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TV에 들어가는 MPEG 디코더(TV가 MPEG 방식으로 인코딩 된 방송 신호를 받아서 원래 방송 내용으로 디코딩하는 기능), 스케일러(디코딩 된 방송 영상을 TV 화면에 맞게 화면에 뿌려주는 기능), MPRT(움직이는 영상으로 수신된 방송 영상을 화면에서 부드럽게 보여지도록 하는 기능) 등 주요 시스템 반도체의 국산화 비율 역시 각각 0.8%, 10%, 0%에 머무르고 있다.
자동차용 시스템 반도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파워트레인, 섀시(chasiss), 바디, 세이프티&시큐리티, 인포테인먼트, 센스 등 주요 시스템 반도체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가 해외 기업에 종속돼 있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 대량 생산을 통해 빠른 시간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분야는 아파트를 짓듯 표준화된 설계를 가지고 얼마나 잘 가공하느냐가 성공의 열쇠인 반면 비메모리 분야는 설계 자체가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 기술에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대기업들은 프로세스 테크놀로지(가공 기술)에만 공을 들이다 보니 소프트웨어 분야는 기술력이 해외 경쟁 회사와 비교해 한참 뒤처졌다는 평가이다.
그 나마 몇몇 중소기업들이 휴대폰 카메라 칩 셋 등을 꾸준히 연구개발(R&D)하며 고군분투 하곤 있지만 이 역시 해외 대형 회사의 파상 공세에 역부족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어렵게 기술 개발을 해도 미국 회사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기업의 기술까지 포함한 새로운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했다"며 "그 바람에 3~4년 전에는 유망했던 중소기업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기술 인력난도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주대영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스플레이가 뜨자 그렇지 않아도 많지 않던 인재가 그 쪽으로 쏠리더니 요즘은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쪽이 각광을 받으니 다시 그 쪽에 몰리는 바람에 시스템 반도체는 찬 밥"이라며 "사람 손에 의해 승부가 나는 것이 시스템 반도체 분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 역시 상당히 뒤처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주 연구위원은 "세계 주요 시스템반도체 회사의 경우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70% 이상으로 반도체 전문가보다 인원도 많고 비중도 더 크다"면서 "반도체 업계와 소프트웨어 업계가 R&D의 첫 단계부터 손을 잡고 추진하고 정부 역시 이런 방향으로 가도록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이 시원스럽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 최근 지식경제부는 2011년 업무 보고에서 내년을 '정보통신(IT)융합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바뀌는 원년'이라 부르며 자동차와 정보통신(IT), 건설과 IT 등 IT를 주춧돌 삼아 바이오, 헬스를 비롯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첨단 융합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육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융합을 강조할수록 외국산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더 많이 기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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