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범어사 천왕문이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다. 몇 년 전에는 숭례문을 방화로 잃었다. 모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오랜 역사이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문화유산과 역사가 잿더미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 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대불이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인해 바주카포의 발사로 파괴된 일도 있다.
이렇게 의도되고 드러난 문화유산과 역사의 파괴 외에도 현재 우리 주변에서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문화와 역사, 생명들이 파괴되고 소멸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파괴와 소멸이 일면 자연계의 순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무지(無知)로 인한 것이라면 다시 생각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현재 전 세계를 휩쓰는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대부분 종교와 사상의 다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종교는 사람들과 사회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이상을 실현하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편향되고 잘못된 종교적 신념은 광적으로 치달릴 수 있다.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들이 종교적 이념을 주장하며 젊은이들의 몸에 폭탄을 장치하여 자살테러를 자행하는 것이 그 일면이다.
종교인이건 종교인이 아니건 간에 다른 많은 사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죽음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의이고 선택할 마지막 방법일 수밖에 없을 때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인의(仁義)와 정의(正義)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것, 꼭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도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것이 바로 살신성인의 정신이다. 이런 사람은 국가와 인종, 종교와 사상을 떠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나의 이념과 종교를 위해 다른 이념과 종교를 가진 사람을 공격하려고 자기를 파괴하거나 죽이는 것은 정의도 아니고 올바른 행동도 아니다. 이런 죽음과 파괴의 행위를 순교라거나 종교적 희생이라고 옹호해서도 안 된다. 어떤 종교적 목적과 수단이라도 생명존중과 평화와 행복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지금 현재의 생명존중과 평화와 행복보다 더 소중한 종교적 목적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지금 한국사회는 종교적 갈등과 분쟁의 위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장 큰 원인이 현 정부와 여당의 잘못된 태도와 정책 집행에 있다고 본다. 정부ㆍ여당의 잘못된 전통문화에 대한 시각과 편향된 종교적 입장이 이런 문제를 점점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토의 동서를 가르는 지역주의로 갈등과 불화를 겪어왔다. 아직 그 지역주의의 불화와 분열의 불씨가 다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종교적 대립과 갈등마저 발생한다면 이 나라와 국민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치인들은 당선되기 전에는 표를 가졌다는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당선된 후에는 후원금을 주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표를 던지는 사람은 정치인들 앞에서 생색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고, 정치인의 물질적 기반은 국민의 세금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가 서로 관용하고 화합할 때 나라와 국민의 미래가 평화롭고 희망적이다. 정치인들은 중도의 시각으로 종교를 화합하게 하는 정책을 펴야 하고, 종교인들은 대립과 투쟁을 떠나 본연의 기도와 수행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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