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늘 새해에 대한 이런저런 전망이 나온다. 하루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탄탄한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새해 전망'은 늘 주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종종 전망을 정확히 적중시켜 명성을 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틀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나 빗나갔더라도 '사전 경고'라는 긍정적 역할을 했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연말에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월드인사이드'는 유명인사와 전문가, 언론사들이 2010년에 내놓았던 전망 중 대표적으로 빗나간 것들을 소개하면서 저물어가는 지구촌 한 해를 정리해 본다.
정영오기자
채지은기자
1. 중국 버블 붕괴
"중국 경제는 반드시 가라앉는다. 향후 9개월 내 중국 경제가 붕괴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3월 투자 전문가 마크 파버)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를 정확이 예견해 명성을 얻은 마크 파버가 확신에 찬 어조로 연내 중국 경제몰락을 공언했다. 미국 헤지펀드계의 거물 제임스 차노스 역시 "2010년 말 중국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것이고 그 충격은 두바이의 1,000배에 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올해 중국 경제는 목표치인 8%를 상회하는 9.5%를 기록하며 전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11년 전망은 더 고무적이다. 중국 경제에 과열 조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 정부의 통화환수 정책이 시작된 만큼 최악의 붕괴 시나리오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2. 미국 더블딥
"미국 경제 더블딥이 가까워졌다(3월)", "미국 3분기 경제성장률은 1%를 크게 밑돌 것이다. 더블딥 가능성 40%로 높아졌다.(8월)"(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
올해 내내 루비니 교수는 미국 경제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다. 2008년 미국 부동산 붕괴를 적중시킨 전문가인만큼 언론은 항상 그의 예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물론 미 경제가 9%를 상회하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며 느린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3분기 2% 성장률을 기록, 루비니 교수의 더블딥 예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4분기는 3.5% 내외로 회복세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제도(Fed) 의장은 최근 "연내 실업률은 8%후반까지 호전될 것이며 내년 성장률도 3.5%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긍정 전망했다.
3. 김정일 건강 악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건강악화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것이다."(2009년12월 로이터통신)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북한 정권의 불안은 매해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새해 변수이지만 지난해 말에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20대의 3남 김정은이 부각되면서 올 연초부터 북한 정권붕괴 임박설엔 어느 때보다 무게가 실렸었다. 올 여름 예상대로 김정은이 공식 후계자로 부상했으나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견해는 계속 엇갈렸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실상 업무에서 물러났다는 주장은 김 위원장이 5월과 8월 두 차례 중국 방문에서 비교적 활발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힘을 잃었다. 하지만 화폐개혁 이후 더욱 극심해진 식량난과 핵개발로 인한 국제고립이 심화하면서 현대사에서 찾기 힘든 '3대 세습'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4. 탈레반 격퇴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우리는 탈레반으로부터 수복하는 점령지 치안을 담당할 아프간 정부인력을 이미 확보했다."(2월 스탠리 맥크리스털 당시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
올해 초까지 미국 정부는 탈레반의 본거지 아프간 남부 마르자를 탈환하면 완벽한 승기를 잡을 것으로 낙관했다. 결국 3월 마르자를 손에 넣고 정부 관료와 1,900명의 경찰을 현지에 보내 치안을 확보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90일이 지난 후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마르자는 마치 궤양이 걸린 내장기관 같다"고 고백해야 했다. 부패한 정부인력들이 민심을 잃어 오히려 탈레반 세력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마르자 주민들은 "낮은 정부가, 밤은 탈레반이 지배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미 그 때 맥크리스털의 경질은 예고돼 있었다.
5. 카스트로 사망
"오랫동안 와병 중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의장에게 2010년이 생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2009년 12월 뉴스위크)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지난해 말 2010년 예상 국제뉴스를 발표했다. 유럽 금융위기, 이란 핵 유엔제재 강화 등 적중한 것도 있으나 빗나간 것도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카스트로의 사망이다. 카스트로는 오히려 건강을 회복, 라울에게 물려줬던 국가평의회 의장직도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또 그의 회복으로 쿠바에서 진행되던 시장경제 도입 역시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한편 카스트로는 지난 6월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이 8월 남아공월드컵 기간 이란에 이어 북한과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예언은 빗나갔으나 최근 한반도 군사적 긴장고조는 예측한 셈이다.
6.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쿠바 관타나모 테러범 수용소는 적어도 1년 이내에 가능한 빨리 폐쇄하겠다."(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켜온 미군 관타나모 수용소는 이슬람권에 반미감정을 격화시키는 촉발제이기도 하다. 전임자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달리 이슬람권 끌어안기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수용소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공화당의 반대와 경제 이슈 등 산적한 현안들에 밀리면서 '오바마 행정부마저 관타나모의 문을 닫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테러 용의자들을 민간 법정에서 재판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지난달 뉴욕에서 관타나모 수감자의 첫 번째 재판이 열리기도 했으나, 286개 혐의 중 1개의 유죄만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7. 그리스 구제금융
"다른 국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는다. 구제금융을 받지 않을 것이다."(2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독자적으로 재정위기를 해결하겠다던 그리스는 2월 대규모 국채발행을 앞세워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재정적자 규모가 당초 전망치의 두 배로 드러나는 등 디폴트(채무상환 유예) 위기에 빠지자 결국 무릎을 꿇었고, 5월 2일 유럽연합(EU) 및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3년 간 1,200억유로(약 133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TV 연설에서 "파산을 면하는 게 국가적 한계선(red line)"이라며 국민들에게 뼈를 깎는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공공부문 임금 동결과 노동시장 유연화, 연금 축소 등 혹독한 구조조정안이 발표되면서 국민들은 거리로 나서 총파업을 벌이는 등 반발했다.
8. 베네수엘라 쿠데타
"차베스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다. 군부가 차베스를 퇴위시키고 질서를 회복할 것이다."(2009년 12월 뉴스위크)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비롯해 서방 언론들은 올해 유독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악의적 평가와 황당한 억측들을 쏟아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엉터리 자료를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경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의 반미(反美) 선봉 차베스 견제가 도를 지나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베스의 집권 사회주의연합당(PSUV)은 그러나 중간평가 성격을 지닌 지난 9월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등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그러나 서방 언론들은 이에 대해서도 야권이 전체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확보, 주요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게 됐다는데 초점을 맞춰 '사실상 야권 승리'라고 보도했다.
9. 미국ㆍ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이스라엘이 부셰르 원전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려 한다면 앞으로 8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8월 존 볼튼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이란의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앞둔 지난 8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원전 공습설이 대두됐다. 보수성향의 볼튼 전 대사는 "연료봉이 원자로에 장착된 뒤 공격하면 방사능이 유출된다"며 공습을 재촉했고, 이란도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더 강력한 보복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전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원전 가동에 반대해 온 미국이 "부셰르 원자로가 민수용으로 설계됐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입장을 바꿨고 이스라엘을 설득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1000㎿급 가압경수로형 부셰르는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 '스턱스넷'의 공격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11월 27일 가동됐다.
10. 신종플루 대유행
"모리셔스, 세네갈 등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신종플루는 아직도 확산 중이다. 아직 신종플루 위험 등급을 변경하기에 부적절하다."(2월 WHO의 제네바 기자회견)
2009년 3월 멕시코에서 첫 발병 이후 급격한 전파력 때문에 전세계를 떨게 했던 신종인플루엔자(H1N1ㆍ신종플루)는 예상과 달리 위력이 크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신종플루로 인한 전세계 누적 사망자가 1만명을 넘어서면서 겨울을 맞은 북반구에는 한때 백신 품귀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초긴장 상태로 대비한 것에 비하면 인명피해가 적었다. 매년 25~30만명이 유행성 독감으로 사망하는 것에 비하면 과민대응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백신을 제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검은 거래 폭로도 이어졌다. WHO는 8월 10일에야 신종플루 대유행(pandemic)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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