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유엔 핵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겠다는 북한의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은 이날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이 진행되는 와중에 핵 사찰을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핵 사찰은 비핵화를 위한 가장 초보적인 검증 작업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주목할 점은 핵 사찰단 복귀를 합의한 상대가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라는 사실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특사가 아닌 이상 구속력을 가진 합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절하했다. 이 당국자는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초청에 의한 것이므로 핵 사찰단 복귀 허용은 북한이 미리 정해 놓은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북한이 과거 방식대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대화 카드를 내미는 전형적인 '투트랙' 전략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특히 진일보한 핵 능력을 무기로 6자회담 등 미국과의 대화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를 분명히 내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오바마 미 행정부가 '동결'과 '불능화'를 뛰어넘은 핵무기 프로그램 '제거'를 북한 비핵화 정책의 최종 목표로 제시하자 그 해 4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불능화 요원들을 전원 추방했고, 한 달 뒤 제2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그 해 10월 방북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조건부 6자회담 복귀' 입장을 밝혀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우라늄농축 시설 공개, 연평도 포격 등으로 인한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가시화한 상황에서 돌연 핵 사찰 수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은 이제 핵 억지력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 같다"며 "6자회담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논의 틀인데, 회담 재개는 핵 능력을 이용해 위기지수를 한껏 끌어 올린 다음에 가능하다는 점을 체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우리 군의 사격훈련에 대응해 "전쟁이 터지면 핵 전쟁이 될 것"(17일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단장) "엄청난 핵참화가 덮어 씌워지게 될 것"(18일 우리민족끼리 논평) 등의 주장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핵 능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사찰 허용의 진정성 여부는 북한이 향후 사찰단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아무런 통제 없이 핵 사찰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핵활동을 외부에 과시하는 기회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미사용 핵 연료봉의 해외 반출 등 실질적인 핵 불능화 조치가 이행되지 않는 한 보여주기식 핵 사찰은 6자회담 재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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