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유령도시가 이런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더.” (풍산 아리랑마트 류한택 사장)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청정 도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등으로 이름을 드날렸던 경북 안동. 하루에도 만 명 이상의 내ㆍ외국인 관광객과 외지인들로 늘 북적대던 안동. 그러나 19일 휴일에 찾은 안동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곳곳에 붙은 구제역 방역안내 현수막, 길목마다 허연 물안개를 뿜어대는 방역초소, 텅 빈 식당, 썰렁한 길거리…. 그나마 길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생기란 찾을 데가 없고, 적막만이 흐르는 곳.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12만마리의 가축이 생매장됐다. 안동 사람들은 ‘구제역이 소 돼지뿐 아니라 도시 전체 죽었다’고 말했다. “도시 전체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내륙의 섬
영남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안동은 지금 ‘구제역이 만든 섬’이다. 안동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안동을 찾는 이도 드물었다. 장모(39ㆍ여)씨는 영주에 사는 친정 남동생 결혼식에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안동에서 간다고 하니 친정에서‘그냥 다음에 보자’고 하더라”했다. 안동시민 전체가 ‘전염병에 걸린 사람’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다.
예천군은 안동에서 출ㆍ퇴근하는 공무원들에게 아예 출근 금지령을 내려 놓고 있고, 봉화와 안동을 오가는 버스도 10분이면 넘을 고개(녹전면 원천리)를 1시간씩이나 더 걸리는 길(와룡면)로 돌고 있었다. 버스회사 관계자는 “도로에 흙을 쌓고 길을 막는 바람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원천리는 아직까지 구제역이 침투하지 않는 곳이다.
필요하면 나가서 장도 보고, 이웃도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 소 돼지를 먹이는 축산농가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이었다. 생필품의 경우 마을 어귀 방역초소까지 배달되면, 마중 나가서 공급 받는 식이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잃은 축산농가 주민들은 지금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다. 이천동의 한 구제발생농가 관계자는 “밤이면 (살처분 충격 때문에) 환청이 들려 아예 잠을 못 잔다. 술로 잠을 청한 지가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살처분이 집행되던 날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친자식처럼 키웠던 가축들을 채찍으로 때려가며 살처분장으로 몰아갔던 장면, 커다란 구덩이에 가축을 사실상 생매장시키던 모습, 집행하던 공무원마저도 그 처절함을 참지 못해 구토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한 개업의는 “가축을 잃은 농가는 말할 것도 없고 살처분을 맡았던 공무원들까지도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부도직전
해질 무렵이면 안동 구경을 마친 관광객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찾는 곳, 풍산한우타운. 평소 주차장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지만 이날은 타운 전체가 휑했다. 간간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그들이 드는 곳은 안동간고등어 집. 평소 이틀이면 소 반마리 양을 팔았다는 타운 내 한 식육식당 주인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오늘 하루 쇠고기 한 근 팔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동관광객 자체가 급감했다. 인근 하회마을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하회마을 방문객은 하루 평균 7,000~8,000명, 주말 등엔 1만명 수준이었지만 이날은 가까스로 1,000명을 넘겼다. 16일엔 248명이었다.
왕래가 끊긴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물류도 사실상 멈췄다. 수확돼 한창 서울 등 타지로 나가야 할 농산물들의 발이 꼼짝없이 묶였다. 수확이 끝난 지금 양반쌀과, 안동사과, 김치 등이 한창 밖으로 나갈 시기. 안동에서 10년째 택배ㆍ화물일을 하고 있는 김모(47)씨는 “밖으로 나가는 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했다. 구정 때 서울 등지로 공급하려면 지금쯤 한창 나가야 하지만 주문이 꺾여 올해 사실상 안동 경제는 죽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안동 내 신선채소 재배농가도 울상이었다. 안동시의회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우남식(51)씨는 “고기가 안 팔리니 들깻잎, 상추 같은 채소도 영 안 나간다”며 “1박스(3㎏) 2만원씩 가던 게 1,500원에 시장네 나와도 안 팔린다”고 전했다.
길에 나앉게 된 이는 또 있다. 안동에서는 가축을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도축업자들. 100여명의 직원을 채용해 지역경제에 적잖은 기여를 해 온 도축장들은 땅만 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권재순(53) 새한축산 대표는 “연말과 구정 대목을 앞두고 야간작업까지 해도 모자랄 판에 직원들을 다 놀리고 있다”며 “도산은 시간 문제다”며 울먹였다.
문제는 구제역이 끝나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 구제역이 종식된 뒤 6개월이 지나야 송아지를 입식할 수 있고, 또 2년을 기다려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에 축산업이 재개되려면 최소 3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예전의 청정 이미지 회복까지는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는지. 안동한우의 명맥 자체가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안동=권정식ㆍ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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