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2006년 사이에 미국의 집값은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가격으로도 2배가 됐다.집값은 끝없이 오를 것 같았고 사람들은 은행 돈을 빌려 집사기에 바빴다. 저금리에 따른 과잉유동성을 주체하지 못하던 은행은 우량고객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비우량고객으로 손길을 뻗쳤다. 몇몇 선각자들이 이상과열을 경고했으나 시장은 한 귀로 흘렸다. 펀더멘털이 튼튼한데다 세계화와 기술발전, 위험 제로의 첨단금융기법, 잘 관리된 금융통화정책 등이 뒷받침하고 있어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다. 2000년 초 '신경제'를 맹신하던 때처럼.
■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뉴욕 월가발 금융위기가 결국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세계 경제의 패닉으로 폭발한 과정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트 메릴랜드대 교수가 지난해 를 출간한 것은 이 같은 망각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올 8월 국내 번역된 책에서 두 사람은 지난 800년간 66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와 재정파탄 사례를 실증 분석해 부채로 이룬 호황은 늘 위기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린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 우리 증시가 14일 꿈의 2000선을 탈환하고 사상 최고점 2064도 눈앞에 뒀다. 2007년 7월25일 처음 2000선을 돌파했다가 하루 만에 미끄러지고 3개월 뒤 재등정에 성공해 보름 남짓 버틴 지 37개월 만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한때 1000선까지 깨진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늘 그렇듯 시장엔 호재를 찾는 낙관론이 넘쳐나고 2300, 많게는 2500선도 가능하다는 견해가 주류다. '이번엔 다르다'신드럼이 지배하는 시장엔 신중론이 끼어들 틈이 없다. 외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 잔액도 38개월 만에 5조원을 넘어섰다.
■ 이번엔 정말 다를까. 무엇보다 상장기업의 체력, 수익성이 2007년보다 50% 이상 늘었고, 세계 경기가 정점이었던 2007년과 달리 지금은 경기회복 초입이어서 상승 여력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30조원, 올해 20조원을 순매수한 외국인의 우호적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호재는 한번만 뒤집으면 악재가 된다. 상장기업 수익과 직결된 미국(실업) 중국(긴축) 유럽(재정위기) 등의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고, 시장은 시가총액의 32%까지 점유한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만의 잔치이니 신경 끄는 게 속 편할지 모르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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