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세(정식명칭은 거시건전성부담금) 도입은 우리 정부의 숙원이었다. 급속한 자본 유출입에 따른 혼란을 통제하는데, 또 국경에 달러 문턱을 만드는데 이 보다 더 확실한 수단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돈의 이동(자본거래)에 세금을 물리는 만큼 반발도 적지 않다. 은행세 도입 방침은 정해졌지만 부과금 요율 산정 등을 두고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왜 서둘렀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는 자본 유출입 규제 필요성을 절감했다.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제동장치를 두지 않는 한,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위기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물론 지금이 자본이동 규제를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작년 이후 달러 유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긴 하지만, 외채 중에서도 '독(毒)'으로 분류되는 단기외채 비중은 40% 수준으로 낮아진 상황. 절정을 이뤘던 2008년 9월말(51.9%)과 비교해서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더구나 대북 리스크, 유럽 재정위기 등을 감안할 때 "(은행세 도입으로) 자칫 달러 유출을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동안 이해당사자와 국내외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내놓고 말을 못 했지만, 지난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자본 유출입 규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면서 숨통이 트인 상황.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 내에 국제적으로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밀어 붙여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특히 청와대에서 은행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 강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도입되나
부과 대상은 비예금성 외화부채, 즉 장ㆍ단기 외채다. 예금보험료를 내고 있어 이중부담이 될 수 있는 외화예금은 제외된다.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억제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를 고려해, 원화 부채 역시 부담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상 기관은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기관이지만, 일단 은행권에만 우선 적용하고 나중에 상황을 봐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비예금 외화부채의 96%는 은행에 집중돼 있다.
부과 요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외채만기에 따라 차등화한다는 원칙은 세워졌다. 단기(1년 이내), 중기(1~3년), 장기(3년 초과) 등 3개로 나눠 만기가 짧은 외채일수록 부담금을 많이 물린다는 방침. 단기 외채일수록 위기 시 급속히 유출돼 시장을 교란시킬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과요율을 ▦단기 0.02% ▦중기 0.01% ▦장기 0.005% 등을 예로 들었는데, 만약 이대로 확정된다면 연간 부담금 규모가 2억4,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거둬들인 은행세는 외국환평형기금에 적립된다. 단, 기금 안에 별도계정을 만들어 외환시장 개입 등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분리 관리한다는 방침. 평상 시에는 외환보유액에 준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위기 시 금융기관에 대한 달러 자금 수혈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남은 과제는
정부는 전문가 공청회, 금융권 등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관련 법령 개정안을 내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입법과정이 순조로우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은행세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부과율 책정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에 첨예한 대립은 불가피하다. 특히 전체 부채에서 외화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달하고 단기외채 비중이 90%에 달하는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들은 이번 조치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 벌써부터 외국계 쪽에선 "은행세는 사실상의 자본통제 조치"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날 부과율을 확정하지 않은 것도 이런 논란을 의식한 결과다.
거둬들인 돈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도 공방이 예상된다. 정부는 외평기금 내에서 별도 계정을 통해 완벽히 분리 관리하겠다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 달러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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