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긴급회의는 마침 일요일에 소집됐다. 그간 사전조율 회의나 전문가 회의를 제외하고, 안보리 공식 회의가 휴일에 열린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위기감이 부각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례 드문 안보리의 휴일 긴급회의와 관련해선 한반도 상황의 급박함보다는 러시아와 미국의 신경전이 보다 직접적 배경이 됐다. 러시아는 지난 17일 한국군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 재개를 반대하며 안보리 긴급회의의 18일 개최를 요구했다. 안보리 회원국 요구가 있으면 긴급회의는 바로 열리는 게 관례이다. 그러나 12월 안보리 의장국인 미국은 회원국들이 자국 정부와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9일에야 회의를 소집했고,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인 비탈리 추르킨은 회의 지연에 유감까지 표했다. 이 같은 미러 간 힘겨루기는 이번 회의에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접촉하며 긴밀한 공조를 당부했고, 북한 역시 중국 러시아 등과 사전접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국 등 서방 회원국은 논리상 북한의 연평도 포격 책임과 우라늄 농축 문제를 먼저 다뤄야 한다는 한국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군의 연평도 포사격 훈련 재개를 문제 삼으며 북한을 간접 지원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전 이견조율도 없이 열린 회의에서 성명서나 결의안 같은 결과물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 외교안보팀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미중러 간 입장이 일치되기는 어렵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AFP통신도 "유엔 외교관들이 현재 안보리가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다만, 외교부 관계자는 "긴급회의에서 언론 브리핑이나, 언론 발표문 정도는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경우에도 연평도 포격 훈련재개에 반대하는 러시아나 중국측 주장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번 긴급회의가 한반도 주변 4대국의 갈등 양상을 더욱 노골화시켰다는 점은 당사국인 한국에게 부담이다. 더구나 긴급회의를 앞두고 중러 외교 책임자들이 전화회담을 열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히 접촉하겠다"고 밝힌 것은 양국 공조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남북 대립이 중-러와 미-일의 대리전의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고, 나아가 동북아 전 지역 정세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긴급회의와 관련,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강도 높게 비난해온 러시아가 이번엔 한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추르킨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한반도 문제 개입 이유를 '국익보호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러시아가 발언권을 강화하면서 스스로 주요 변수임을 자처하는 상황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다만, 러시아는 남북한에 대한 지렛대가 많지 않아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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