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율고)가 추가모집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자 교육 당국과 해당 자율고, 학부모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섣부른 자율고 확대 정책으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져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문고는 19일 “학생 부족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다”며 자율고 지정 취소를 요구했으나 시교육청은 “이미 선발 절차가 완료돼 합격자가 정해졌기 때문에 현행법상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용문고 합격생들의 학부모들도 “자율고로 유지돼야 한다”는 쪽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혼란에 빠졌다.
모집정원이 455명인 용문고는 17일 마감한 추가모집을 거치고서도 지원자가 166명에 불과해 충원율이 34.7%에 그쳤다. 무려 289명의 결원이 생겨 학교의 정상 운영이 힘들어졌다고 판단한 용문고는 19일 긴급학부모회의를 소집한 뒤 시교육청에 자율고 지정 철회를 요청했다. 학생 1인당 수업료를 400만원으로 잡아도 11억여원의 수업료가 걷히지 않아 운영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자율고의 지정을 취소할 경우 20일부터 시작되는 후기 일반계고 전형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자율고에 합격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기대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용문고의 일반고 재전환 불가 방침을 밝혔다. 현행 초중등교육법도 전기전형인 자율고 합격자가 후기 일반계고에 입학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유식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학교에서 내걸었던 모든 조건을 지키면서 자율고로 존속하겠다”며 믿고 따라줄 것을 요청했으나 학부모들의 반발이 계속돼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학부모 이모씨는 “미달 사태로 학생수가 줄어들면 내신에서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반계고에 지원했을 것”이라며 교육 당국을 비판했다. 다른 학부모 나모씨도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일반계고로 전환되는 게 낫다. 후기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도록 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가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문고 외에도 동양고(181명 결원) 장훈고(147명 결원) 등 9개 자율고에서 861명의 결원이 생겨 자율고 미달 사태에 대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방의 한 자율고 교장은 “학교를 다양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일반고의 3배 가량되는 등록금을 낼 학생은 많지 않다”며 “미달된 학교가 대부분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자율고 학비에 대한 부담이 높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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