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010년의 박태환(21ㆍ단국대)을 한마디로 얘기할 때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박태환은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보란 듯이 부활했다. 그것도 완벽한 부활이었다.
11월14일 중국 광저우의 아오티 아쿠아틱 센터. 박태환은 첫 종목인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분44초80의 기록으로 가뿐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출발 반응속도부터 50m, 100m, 150m 구간에서 한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은 압도적인 금메달이었다. 개최국 중국이 자랑하는 신예 쑨양과는 1.5초 가까이 벌어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아시아 신기록도 0.05초 앞당겼다.
첫 단추를 잘 끼운 박태환은 이틀 뒤인 16일 자유형 400m에서 다시 한번 금빛 역영을 펼치며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3분41초53으로 중국의 쑨양과 장린을 2, 3위로 밀어냈다. 역시 시작부터 1위로 치고 나갔고, 한번의 역전 허용도 없이 400m 터치 패드를 찍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금메달은 없어 보였다. 자유형 100m는 스퍼트가 장기인 박태환에게 금메달과는 먼 종목 같았고, 1,500m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르면 출전 자체가 독이 될 수도 있는 종목이었다. 그러나 17일 100m 결선에서 박태환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출발 반응속도 0.69초로 다른 두 명과 함께 공동 선두로 출발한 박태환은 50m 구간을 통과할 때만 해도 5위로 처졌으나 50m 턴 이후 폭발적 뒷심으로 기어이 세 번째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기록은 48초70. 세계기록인 46초91과는 격차가 적지 않았지만, 전신 수영복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온 기록이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박태환으로서는 100m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한판이었다.
이쯤 되자 중국 언론들은 박태환을 '수영왕'으로 일컬으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박태환과 라이벌 구도를 이뤄 온 장린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중국은 장린의 추락에 실망을, 박태환의 건재에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4년 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던 박태환은 2회 연속 3관왕이라는 눈부신 금자탑을 쌓았다. 18일 자유형 1,500m에서 15분01초72의 기록으로 쑨양에 이어 은메달을 추가한 박태환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로 대회를 마쳤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허탈하게 짐을 싼 뒤 이듬해 동아시안게임 자유형 1,500m 2위를 시작으로 도하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베이징올림픽까지 숨가쁘게 금메달 퍼레이드를 펼쳐 온 박태환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의 거침없는 날갯짓 역시 작년 로마세계선수권에서의 출전 전 종목 결선 진출 좌절이라는 시련이 있었기에 더욱 빛났다. 호주의 마이클 볼 코치와의 성공적인 조합도 완벽한 부활에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조준해야 할 타깃은 내년 상하이세계선수권과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재차 확인한 자유형 200m와 400m에서의 경쟁력을 품고 박태환은 새해 벽두부터 다시 물에 뛰어든다. 광저우에서의 포효를 2년 후 런던까지 잇기 위해.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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