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포지션이지만 오히려 여유가 넘친다. 라이트에서 레프트로 포지션을 바꾼 김학민(27ㆍ대한항공)의 표정이다. 보통의 새로운 도전은 시행착오를 동반하지만 김학민에겐 먼 이야기다.
레프트로 변신한 그는 이제서야 자신에게 맞는 신발을 신은 듯 펄펄 날고 있다. 김학민이 낯선 포지션에서 더욱 매서운 스파이크를 때려낼 수 있는 건 빼어난 점프력 덕분이다. 점프력만큼은 단연 으뜸인 김학민의 레프트 적응기를 들여다봤다.
농구 골대를 잡으면서 시작된 배구인생
김학민은 서전트점프 90㎝ 이상을 자랑한다. 용병과 국내 선수들을 통틀어 최고의 점프력이다. V리그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는 가빈 슈미트(삼성화재)도 서전트점프가 80㎝에 불과하다. 김학민도 "점프력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학민의 가공할 만한 점프력은 스카우트의 눈을 단숨에 잡아버렸다.
중학교 3학년 때 김학민은 스카우트의 눈에 띄었다. 그는 "기본적인 테스트를 했는데 체격을 보더니 점프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점프해서 농구 림을 확 잡아버렸다"며 "결국 테스트에 합격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183㎝이었던 김학민이 305㎝의 농구 림을 잡았으니 스카우트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전환점이 된 아시안게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김학민의 배구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국가대표팀에서 레프트로 활약하면서 레프트 포지션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 그는 "국제경기에서는 서브의 강도나 높이가 국내리그와 확실히 다르다. 이러한 국제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며 "대표팀에서 고강도 훈련량을 소화하다 보니 오히려 체력도 더 좋아져서 올 시즌에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민이 '훌륭한 레프트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결정적인 사건도 생겼다. 그는 "일본과 준결승에서 (석)진욱이 형이 갑자기 부상을 당했다. 이후 리시브가 많이 흔들리면서 아쉽게 패했다"며 "서브 리시브가 좋은 레프트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수비 훈련을 더욱 열심히 해서 공수 양면에서 만능인 진욱이 형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신진식-석진욱의 계보 잇는 레프트 도전
김학민은 올 시즌 4경기에 출전해 48점을 기록하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공격성공률이 61.73%에 달해 이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공격성공률 60%가 넘는 선수는 김학민이 유일하다. 지금 현재 '레프트 김학민의 점수'를 물어보니 '60점'으로 선을 그었다.
그는 "아직까지 수비적인 부분에서 한없이 부족하다. 진정한 레프트가 되기 위해선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학민은 '신진식과 석진욱'을 롤모델로 꼽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진식이 형을 좋아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진식이 형, 진욱이 형과 함께 훈련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꼭 두 선수처럼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또 아내 김잔디씨의 내조가 무뚝뚝한 남자였던 김학민을 한결 여유로워질 수 있게 만들었다. 김학민은 "아내가 코트에서 많이 웃으라고, 인상 쓰지 마라고 자꾸 주문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건강도 많이 챙겨준다. 이전에는 영양제 같은 걸 아예 먹지 않았지만 지금은 4개의 영양제를 먹는다"고 활짝 웃었다.
올 시즌만큼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을 제치고 우승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대한항공의 챔피언 꿈의 키는 화려한 변신을 선택한 레프트 김학민이 쥐고 있다.
용인=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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