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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스토리] 쭝칭허우(宗慶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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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 스토리] 쭝칭허우(宗慶後)

입력
2010.12.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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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은 누굴까. 뜻밖에도, 마흔이 넘은 뒤 ‘물 장사’를 시작해 큰 돈을 번 남자다. 중국 최대 음료업체 와하하(娃哈哈)그룹의 창업주 쭝칭허우(65)가 그 주인공이다. 2009년 미국 포브스지 조사에서 중국의 세 번째 갑부로 꼽혔던 쭝이 올해에는 재산 534억위안(약 9조2,000억원)으로 중국 최고 갑부에 등극했다.

회사 이름은 ‘어린이 웃음소리’

1945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쭝은 중학교까지만 다녔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쭝은 염전과 농장 등에서도 일했다. 또 청년들이 농촌에서 노동을 체험하도록 했던 마오쩌둥의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도 참여해 30대 초반까지 농장을 전전했다. 그러던 79년, 부모가 퇴직하면 자녀가 직업을 물려받는 당시 관행에 따라 어머니 은퇴에 맞춰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학력이 낮아 어머니가 맡던 교사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고, 대신 항저우의 한 초등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다.

87년, 쭝이 42세 되던 해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은행에서 14만 위안을 빌려 퇴직교사 2명과 함께 시작한 사업으로 우유나 음료수 아이스크림 학용품 등을 학교에 배달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이 와하하 그룹의 모태가 돼 89년 ‘항저우 와하하 식품 영양공장’을 짓고 와하하그룹의 발판이 된 어린이 영양음료를 개발한다.

당시 영양음료를 생산하는 사업자는 중국 전역에 38곳이나 있었지만 후발주자인 와하하그룹은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춘 회사는 와하하가 유일했기 때문. 사실 와하하그룹이 사업에 뛰어든 초기만 해도 중국 당국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어린이 관련 시장이 양적으로 축소돼 유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쭝은 오히려 부모가 한 명의 자녀를 ‘소황제’처럼 떠받들며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고 봤다.

어린이를 뜻하는 와(娃)와 웃음소리 하하(哈哈)를 더해 ‘어린이의 웃음소리’를 뜻하는‘와하하(娃哈哈)’로 회사 이름을 지은 것도 목표 시장이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요구르트, 생수 등으로 상품을 다양화해 나가던 와하하가 중국 최대 음료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96년 ‘에비앙’ 생수로 유명한 세계적 식품회사 다농(Danone)과 손을 잡으면서다. 와하하와 다농은 5개의 합작회사를 세웠는데 총 7,000만달러를 투자한 다농이 각 회사의 지분 51%를 가졌다. 대신 와하하는 경영권을 차지했고, 생산과 유통 판매 등 전 분야에서 와하하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11년 뒤인 2007년에는 합작회사가 39개로 늘 정도로 다농과 와하하는 중국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독특한 유통망도 성공 비결로 꼽힌다. 쭝은 각 지역별로 가장 뛰어난 도매상을 정해 이 도매상과만 집중적으로 거래하고, 이들이 다시 산하의 도매상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와하하만의 거대한 유통 조직을 형성했다. 또 분기마다 도매상들로부터 선금을 받은 뒤, 은행 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반영한 규모의 물품을 공급했고 연말에는 회사 수익의 일정 부분을 도매업체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유대관계를 강화했다.

토종 기업 프리미엄

‘중국인은 자국산 콜라를 마신다’

98년 와하하가 콜라 ‘페이창커러(非常可樂ㆍ비상콜라)’를 출시하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미국계인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양분하던 시장 구도를 깨기 위해 민족 브랜드, 토종 브랜드임을 강조한 것.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도 범양식품이 ‘콜라 독립’을 외치며 애국심을 자극한 ‘815 콜라’를 내놨던 것과 거의 같은 방식이다. ‘815의 콜라’의 시장 점유율을 한때 14%까지 끌어올렸던 한국의 범양식품은 결국 2005년 파산하고 말았지만, 페이창커러는 현재 16%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와하하의 토종 브랜드 파워는 다농과의 상표권 분쟁 때도 발휘됐다. 와하하는 다농 합작사의 제품에만 와하하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비합작기업 제품에 와하하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2007년 다농과 갈등이 빚어졌다. 계약을 어긴 쪽은 와하하였지만 중국 내 여론은 다농이 중국 기업을 손쉽게 인수하려는 악덕 기업으로 몰렸고, 쭝은 부당하게 핍박 받는 중국 기업인으로 미화됐다. 다농이 지난해 지분 51%를 매각하며 둘 사이 합작은 청산됐다.

쭝은 ‘골리앗(다농)’과 맞서 싸운 다윗으로 묘사되며 중국인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08년 쭝과 부인이 미국 영주권자이고 외동딸 쭝푸리(28)가 미국 시민권자임이 드러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또 같은 해 3억 위안(약 510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다음 주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황제’로 불리는 셸던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을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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