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들 소비심리 위축…'저성장·저수익' 뉴 노멀 시대로 가나
올해 미국경제의 최대 화두는 단연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의 불확실성이었다.
지난해 말 다양한 형태와 경로의 경기회복 시나리오가 제시된 가운데, 대다수는 미국경제의 완만한 'U자형' 회복을 예상했다. 또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핌코의 엘 에리언 회장이 '뉴 노멀(New Normal)'을 언급하면서, 뉴 노멀이 위기 이후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신조어로 대두됐다. 1980년대 이후 규제완화, 금융혁신 등에 힘입어 고성장, 고수익을 경험한 미국 등 세계경제가 서브프라임 사태를 계기로 저성장, 저수익 등 뉴 노멀 시대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뉴 노멀이란 용어가 대두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올해 미국경제는 어떠했는가. 지난 여름 월가에서는 미국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더블 딥'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당초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처럼 완만한 'U자형' 회복을 보였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였지만 그 속도가 매우 완만했던 것은 올해 초반까지 경기회복을 이끌었던 재정정책과 기업 재고조정 모멘텀이 약화된 후 소비 등 민간부문의 자생적 성장동력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
미국은 가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중심의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주택가격 하락으로 주택이 차압을 당하거나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대량 해고를 경험하면서 씀씀이를 줄이는 등 소비행태를 바꿨다. 한 예로 위기 이후 미국인 가운데 '스테이케이션 족(族)'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스테이케이션이란 'stay(머무르다)'와 'vacation(휴가)'을 합친 신조어로, 휴가 중 장거리로 여행을 가는 대신 집에 머무르며 당일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은퇴계획에 대한 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은퇴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3년 정도 늦출 것이며 상당수가 70세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로 이전 조사에서는 "심적으로 어딘가에 계속 소속되고 싶어서"가 압도적이었으나 이번에는 "충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아졌다. 이처럼 미국인들의 소비인식이 변화하면서 금융위기 직전 1% 이하로 하락하였던 저축률은 금융위기 이후 5~6%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소비를 덜 하고 경제 회복도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년 미국경제는 어떠할까? 월가의 주요 금융회사들은 내년도 경제성장이 올해와 비슷한 2%대 중후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성장이 특징인 '뉴 노멀'에 부합한다. 하지만 일부는 성장률이 좀더 높게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은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를 시작으로 연말 쇼핑시즌이 시작되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11월 네번째 목요일) 다음날인 금요일 소매업자들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시작하는 날이고, 사이버 먼데이는 블랙 프라이데이 다음 월요일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격할인을 확대하면서 유행한 용어다. 미국소매협회는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 실적이 2004년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다고 잠정 발표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월가에서는 내년도 소비전망이 당초 예상보다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또 이달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부양을 위해 공화당과 금년 말 종료하기로 예정됐던 가계의 소득세율 인하혜택을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말까지 근로자의 사회보장세율 2%포인트 인하도 포함됐다.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2011년 미국경제는 가계소득 개선 등과 함께 0.5~1.0%포인트까지 성장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뉴 노멀의 주창자인 에리언 핌코 회장도 최근 내년 미국 경제의 성장 전망을 2~2.5%에서 3~3.5%로 상향했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미국경제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과정에서 저성장을 보이는 뉴 노멀로 갈지, 아니면 예상과는 달리 회복세가 빨라지면서 세계 1위 경제대국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장정수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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