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카페에 여학생인 J가 이렇게 써놓았다. '브람스의 4번 교향곡처럼 잔인하게도 이 거리 위로 너를 보내야 했던 계절이 온다'고. 4번 교향곡은 브람스 자신도 제일 좋아했던 교향곡. 브람스가 52세 때 작곡한, 만추의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그 교향곡을 들으며 추억할 사랑이 공부에 바쁜 J에게 있었단 말인가.
그러다 시를 쓰는 제자들을 내 나이에 비교해 모든 것을 예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저희들 나이 무렵에 아픈 사랑을 했는데,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그들 사랑에 대한 중심을 내 나이에 맞추고 있었다는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사랑의 중심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폭풍이 불어도 자기 속에서 불고, 눈보라가 쏟아져도 자신의 안으로 쏟아지는 것인데 이방인인 나는 그들을 어리다고만 보았으니. 한 번은 사랑에 대한 시편을 공부하다가 "늬들이 사랑을 알아?"라고 물었을 때 선배의 딸이라 조카라고 부르는 K가 "저도 독한 사랑 해봤어요"라고 했을 때 피식 웃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 실수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진실로 사랑했다면 누구의 사랑이든 그 사랑은 존중받아야 한다. J에게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했다가 공개적으로 거절당한 남학생의 사랑도 존중해야 한다. 사랑했다면 이제 그들도, 그들 나이 때의 나처럼 알 것이다. 슬픔이 붉은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을.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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