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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반자본 발전 사전' "19가지 서구식 발전 담론은 모범 아닌 탈선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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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반자본 발전 사전' "19가지 서구식 발전 담론은 모범 아닌 탈선 사례"

입력
2010.12.1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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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작스 등 지음ㆍ이희재 옮김

아카이브 발행ㆍ680쪽ㆍ3만2,000원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꽤 희망적인 발표를 내놨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뒷걸음쳤던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년 만에 다시 2만 달러를 넘어 올해 2만 510달러, 내년에는 사상 최대인 2만 3,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길 만한 소식이지만, 체감하기 어렵다. 국민소득이 올라갔다는데 살기가 좋아졌나. 글쎄. 조금 더 비판해보자. 최근 예산안 날치기 통과로 새해에는 밥 굶는 아이들을 위한 예산이 한 푼도 없다는데, 사상 최대 국민소득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우리는 왜 그토록 성장에만 매달리는가. 2만 달러가 무슨 훈장이나 강력한 처방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품은 독자들에게, <反자본 발전 사전> 은 유용한 책이다. 동시에 위험하다. 성장과 개발에 사로잡힌 고정관념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파괴력을 지녔다. 읽고 나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무조건 좋아해야 할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성장이 곧 발전인가, 모든 개발은 진보인가, 진보는 늘 정의로운가, 국가는 항상 국민의 편인가, 빈곤은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시장은 진정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 등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 다음 촉구한다. '생각을 뒤집어라. 그리고 행동하라'고.

이 책은 서구식 발전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비판적 지식인 19명의 공동 저작이다. <학교 없는 사회> 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세계적 지성 이반 일리치,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의 고문을 지낸 남미 작가 구스테보 에스테바, 대안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도 출신 사상가 겸 활동가 반다나 시바 등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해온 쟁쟁한 필자들이 모였다.

책임집필자이자 엮은이인 볼프강 작스는 기후환경 전문가로, 세계화 시대의 생태와 정의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저술가이기도 하다. 원서('The Developement Dictionary')는 1992년 초판, 2009년 개정판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개정판을 옮겼다.

저자들은 서구식 발전 담론의 핵심 개념 19가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발전, 환경, 평등, 도움, 시장, 요구, 한 세계,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자원, 과학, 사회주의, 생활 수준, 국가, 기술을 차례로 해부한다. 그 개념들이 나온 배경과 변천 과정을 밝혀, 그럴 듯해 보이는 명분 뒤에 가려진 모순과 한계를 들춘 뒤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빈곤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풍요를 만들고 빈곤층의 굴욕은 부유층의 자부심을 낳고 빈곤층의 의존성은 부유층의 자립성을 낳는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평등) "발전이라는 미신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기우제의 춤이 불을 붙인 요구는 지구의 약탈과 독살을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더 깊은 수준에서도 작용했다. 바로 사람의 본성을 바꾸어놓은 것이다."(요구)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통렬하다. 사람과 자연을 잡아먹는, '경제 성장의 식인종 같은 면'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이 날카롭다. 저자들은 '발전은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연을 학대해서 쌓아온 서구식 풍요 모델은 모범이 아니라 탈선 사례라는 것이다.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앞에서 그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따라잡기 경쟁을 해봤자 결국은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시, '발전'을 묻는 저자들의 이의 제기는 성장과 개발이 묵과해온(또는 얼마간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해온) 가치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정의와 공정, 다양성이 그것이다. 이 책이 요구하는 반성 중에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서구식 발전론과 세계관에 점령당한 정신적 식민 상태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성장으로 탈식민화는 이뤘지만, '상상력의 탈식민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 책의 지적은 한강의 기적을 자랑스러워하는 우리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발전의 한계가 자명해지면서 인기 슬로건이 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의 허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구호조차 '발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여전히 약탈적 성장을 지지하고 있음은, 4대강 개발 등 '녹색성장'의 이름 아래 진행되는 일련의 사업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지적된 바이다.

개발시대 가치관을 신봉하는 '경제 대통령'과, '부자 되세요'를 최고의 덕담으로 나누는 국민들이 사는 오늘의 한국에 이 책은 묻는다. 우리는 올바르게 살고 있습니까.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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