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하딩 지음ㆍ정영목 옮김
21세기북스 발행ㆍ248쪽ㆍ1만2,000원
미국 소설가 폴 하딩(43ㆍ사진)의 데뷔작이자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서사보다는 묘사가 두드러지는 미문으로 쓰여진 이 작품은 미국 동북부 지역을 배경으로 크로스비 가문 3대를 다루고 있다. 3대는 전직 교사이자 시계공인 조지, 주방기구 땜질(땜장이라는 뜻의 책 제목 'tinkers'는 여기서 왔다)과 잡화 판매로 집안 생계를 꾸렸던 그의 아버지 하워드, 목사였던 조지의 할아버지다.
집안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조지와, 그의 회상이 불러낸 아버지 하워드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되던 소설은 중반부터 하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수입이 변변치 않은 행상이면서 지병인 간질로 고통받는 하워드는 그러나 가난한 이웃들의 허드렛일을 기꺼이 돕고, 노숙자의 생필품을 챙겨주려 먼길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선한 인물이다.
어느날 하워드가 집안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켜 아들 조지의 손가락을 심하게 깨무는 일이 벌어지자 그의 아내는 남편을 정신병원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이를 안 하워드는 가족에 대한 원망을 품고 집을 떠난다. 그 쓸쓸한 여정에 하워드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정신병 때문에 점점 괴상한 설교를 하다가 아내와 교인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 아버지를, 그런 아버지를 찾으려 숲 속을 헤매다가 처음 발작을 일으켰던 자신을. 하워드는 새 정착지에서 잡화 수레를 버리고 매장 포장담당 직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시계공이 된 조지가 18세기에 만들어진 시계를 분해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묘사한 부분(18쪽)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서술 양식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작가 하딩은 100년에 가까운 3대의 삶을 다루면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가문의 역사를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 사람 인생의 특정 지점들을 더할 나위 없이 세밀하게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마치 조지가 겉보기에 고풍스러운 고(古)시계의 뒤판을 열어 개개의 부품에 묻은 세월의 흔적을 살피듯. 이야기라기보다는 차라리 농밀한 문장으로 그려진 세밀화들의 몽타주 같은 이 소설은, 서로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세월을 견디는 크로스비 가 부자(父子)들의 비애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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