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현대그룹이 인수자금의 일부인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자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기로 최종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논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우선 현대그룹과 채권단, 예비 우선협상 대상자인 현대차가 이미 소송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매각작업의 장기 표류는 불가피하다. 인수합병(M&A) 시장의 규칙을 세우지 못하고 시종 끌려 다닌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거센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현대그룹이 2차로 제출한 나티시스 은행 대출확인서 역시 자금출처 의혹을 규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결론짓고,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 해지동의안과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승인안을 어제 주주협의회에 제출했다. 현대그룹이 제기한 MOU 해지금지 가처분소송을 의식해, 설령 MOU가 유효하더라도 SPA를 체결하지 못하게 이중 장치를 한 것이다. 현대그룹과의 거래를 끝내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규모도 5조원이 넘는 대형 M&A가 이런 식으로 귀결된 일차적 책임은 일단 채권단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현대그룹에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책임은 매각 첫 단계부터 분명한 규칙을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채권단, 정책금융공사 등을 통해 입김을 행사하면서도 뒤에 숨어 몸만 사린 금융당국에 있다. 객관적 여건상 현대차가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될 것으로 예견하고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심판까지 그라운드에 뛰어드는 촌극을 연출한 셈이다.
1조 2,000억원의 자금출처가 관심사이긴 하나, 자금 성격을 따지지 않는 M&A 시장의 관례로 비춰 채권단이‘승자의 저주’운운하며 끼어든 과정도 개운하지 않다. 현대차가 분위기를 잡고, 정부가 대주주인 채권단이 현대그룹을 몰아붙인 과정은 또 다른 의혹을 낳을 수 있다. 그나마 판을 다시 짜는 것이 모두가 패자인 이번 게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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