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닷바람에 굵은 눈발이 흩날린 17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당섬외항선착장. 군 당국이 18~21일 사이 해상 포 사격 훈련 재개를 예고한 가운데 연평도 주민들과 취재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사흘 전에 뭍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는 김모(52ㆍ여)씨는 “인천 찜질방에서 지낼 때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지만 혼자 있는 개가 걱정돼 더 이상 밖에 있을 수 없었다”며 “정부 지원금 100만원은 이미 다 썼고 굴을 따 생계를 이어갔는데 막막하다”고 말했다. 선착장에는 강풍에 작업을 나가지 못한 배 십여 척이 묶여 있었고 거리에는 군경 차량들이 간혹 지나다닐 뿐이었다. 지난달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주민 1,400여 명이 사는 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평도는 여전히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날 29명의 주민이 섬에 돌아왔지만 오후 2시 여객선으로 29명이 빠져나가 섬에 남아있는 주민은 불과 116명. 북한 포격이 집중됐던 연평면 남부리 일대에는 파손된 집들이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고 대문에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놓은 집도 곳곳에 보였다. 대부분의 집은 문이 굳게 잠겨있었고 주인 잃은 개들은 며칠을 굶은 듯한 퀭한 눈으로 힘없이 꼬리를 흔들어댔다. 깨진 유리창 등 북한 포격의 상흔도 그대로였다.
섬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지난달의 악몽 같은 현실이 재연되지 않을까 불안감에 전전긍긍했다. 더구나 북한이 이날 “사격훈련을 강행하면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꽃게잡이 배 선원들 식사 때문에 남아 있다는 박모(52ㆍ여)씨는 “만날 사람도 없고 주로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며 “불안해서기도 하지만 남편이 인천에 나가 있어 조만간 뭍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최모(46ㆍ여)씨는 “창고에 있는 꽃게들 판로가 막혀 걱정”이라며 “북한이 또 공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민들은 ‘설마’하면서도 군의 포 사격 훈련에 북한이 대응 공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선원 김모(53)씨는 “미군도 이번 훈련에 참여한다는데 설마 북한이 또 공격을 하겠느냐”면서도 “이번에도 일이 터진다면 연평도에는 정말 단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격 훈련 개시 전 주민을 대피소로 이동시킬 예정인 군 당국과 연평면은 오후부터 안내 방송을 시험하고 대피소 실태 등을 점검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북한의 위협에도 설마 또 (북한이) 쏘겠나 하는 생각에 섬에 머물러 있는 주민들이 있다”며 “남아있는 주민들에게는 세대당 난방용 등유 200ℓ를 지급하고 대피소 12곳에는 공무원 2명씩을 보내 식료품과 구급약품 등 비치품들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평도=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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