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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 <1>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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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 <1>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입력
2010.12.1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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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겪으면서 처제는 충격을 받아 한쪽 귀가 멀었고, '내 마음 속의 유일한 제자'라며 저를 아끼시던 은사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김종익(56)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피해자로서 그 동안 자신이 겪은 신산(辛酸)한 삶을 말하는 내내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앙다문 입이 다시 열렸다. "이런 국가를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의무를 다하겠습니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김씨에 대한 사찰이 표면화한 것은 2008년 9월. 김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른바 '쥐코' 동영상을 빌미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가 대표로 있는 KB한마음에 대해 두 달간 불법 압수수색과 광범위한 관련자 소환조사를 벌였다. 지원관실은 회사 직원들과 원청업체인 국민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김씨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지분 이전까지 하게 했다. 공직자의 윤리를 감시하는 기관이 민간인에게 무차별 사찰을 감행한 것이다.

기자가 김씨를 만난 것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대걸레를 잡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내'는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1999년 교통사고로 숨진 김씨의 친동생 종배씨의 유업을 이어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김씨와 아홉 살 터울인 종배씨는 1982년 성균관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갑자기 소속도 알 수 없는 기관원들이 김씨의 집에 들이닥쳤다. 종배씨를 찾기 위해 나왔다는 말만 하고는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그 충격으로 첫 아이를 유산했다.

아내의 유산도 그렇지만 동생이 걱정이었다. 한 달간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중 경찰의 연락을 받고 서울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를 찾았다. 동생은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말 없이 김씨를 맞았다. 이후로도 고초를 겪은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잘못된 국가 권력은 30년 가까이 그렇게 김씨의 가정을 괴롭혔다. 그래도 김씨는 "예전부터 권력에 의해 부당한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민간인 사찰도 다른 사람보다는 담대하게 겪어낼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졸업 후 노동운동에 몸을 내던졌던 동생을 주변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2007년 영등포에 사무실까지 마련한 동생의 지인들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민간인 사찰에 시달리느라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마음의 짐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 거의 매일 출근해 청소나 문서 정리, 일본어 자료 번역 등 손을 보태고 있다.

물론 재정적인 도움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도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찰이 시작된 직후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표를 내면서 수입이 끊겼다. 10여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가입하고는 잊고 있었던 보험금 1,000만원과 아내의 휴면계좌에서 나온 500여만원 등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불만 없이 버텨준 큰 아들이 그저 고맙고 든든할 뿐이었다.

그가 겪은 경제적 곤란은 사람에 대한 실망에 비하면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사찰이 시작되자 돈을 빌려준 사람은 물론이고 회사 직원들까지 그의 연락을 피했다. 특히 3년 가까이 같이 출퇴근하면서 신뢰를 쌓았던 부하 직원 A씨의 배신은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A씨는 김씨가 정부의 사찰을 피해 일본에 나가 있던 2008년 10월 KB한마음의 지분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자신에 대한 사찰 때문에 회사가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분을 넘겼다. 지난 10월 김씨에 대한 사찰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이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에게 징역 1년6월, 김충곤 점검1팀장에게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민간인 사찰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 김씨는 회사로 돌아가려 했지만 A씨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거부하고 나섰다. 그는 "직원들에게 너무나 실망해 회사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법성이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그에게 사찰 이유에 대한 해명과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건이 불거진 뒤 정부와 검찰의 소극적인 대처도 불만이다. 김씨가 MBC PD수첩을 통해 불법사찰 사실을 폭로한 것은 올 6월29일. 그러나 총리실은 6일이 지나서야 이를 인정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그 나흘 뒤에야 총리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때는 이미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결정적 증거가 대부분 삭제 또는 파괴된 뒤였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개입 등 핵심 의혹은 이를 뒷받침할 숱한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밝혀지지 못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제 소송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해 국가가 얼마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국가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며, 이런 일을 통해 공무원들이 불법적인 일을 했을 때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는가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며 국가와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려는 김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잇단 사찰에 우려의 목소리 커져

이명박 정부 들어 불법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부터 최근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국가정보원, 국군 기무사령부 등 권력기관에 의해 자행된 사찰은 알려진 것만 해도 10여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권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사찰은 일반 국민과 정치인 등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행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 김종익씨를 정부에 비판적인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찰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6월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 박원순 대표, 국군 기무사령부는 같은 해 8월 민주노총 간부를 비롯한 민간인 26명에 대한 뒷조사를 벌였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광범위한 사찰은 비판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권력기관의 과거 회귀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사찰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 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줄였다"면서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 등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 감시해 권력 순응의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광범위한 사찰은 결국 '나도 언제 사찰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아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우려했다.

공직자도, 군인도 아닌 일반 국민들에 대한 사찰에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기무사령부가 나섰다는 점에서 사정기관들이 경쟁하듯 사찰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기관들이 대통령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뚜렷하게 하기 위해 광범위한 사찰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 들어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정례 대면보고가 부활된 것이 이러한 불법행위를 부추겼다는 견해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인권의식이다. 오 국장은 "사정기관들의 (사찰에 대한) 욕구를 대통령이 인권보호에 대한 의지를 갖고 억누르고 끊임없이 깨우쳐 줘야 하는데 이 정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면서 "사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되고 사건 수사를 한다고 해도 정권이 의지가 없다면 몸통은 그대로 두고 꼬리만 자르는 격"이라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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