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한 50대 남성이 10대 초반의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져 전자발찌 관리 시스템의 한계와 허점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는 40대 남성이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후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갔으며 전자발찌를 착용한 30대 남성이 시내버스 안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19일 서울 강동경찰서와 동부지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절도 혐의로 구속한 박모(52)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같은 달 초 서울 모처에서 여중생 A(12)양을 성폭행한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박씨는 지난달 1일 오후 5시께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A(12)양에게 “짐이 너무 많으니까 좀 거들어주면 용돈을 주겠다”며 인근 건물 옥상으로 유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범행 이틀 후인 3일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1995년 아동성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뒤 올 7월 출소했으며,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에 따라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자발찌 착용 관련법은 2008년 9월부터 시행됐으며 박씨가 출감한 지난 7월 대상자를 소급ㆍ확대하는 내용의 개정법이 발효돼 박씨 등 6,900여명이 추가 착용 검토 대상자로 올랐다. 이들은 모두 2008년 9월 이전 판결을 받았거나 출소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자들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12월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는 전국에 317명에 이른다.
박씨 등의 재범으로 상습 성폭력 범죄자 등에게 전자발찌를 채움으로써 재범률을 현격하게 낮출 수 있다고 했던 법무부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실제로 박씨는 범행 이후 이틀이나 서울 도심을 유유히 돌아다녔지만 절도 혐의로 붙잡히기 전까지, 그리고 추가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법무부 산하 중앙관제센터 등은 범행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자발찌 시스템은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 경력자가 이를 훼손하거나 해당 주거지를 벗어난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 때, 또는 초등학교 등 특정 장소에 갈 때 경보음이 울려 관제센터 보호관찰관이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돼 있다. 경보음이 울리면 보호관찰관은 관할 경찰에 연락해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시스템으로는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찰 관계자는 “전자발찌를 통해 성범죄 경력자의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이것만으로는 이들의 재범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성범죄자 치료와 행동조절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도입해 전자발찌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발찌를 채웠으니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전자발찌를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외국이 이를 재범방지 프로그램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이들의 범죄 성향을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보호관찰 등과 병행할 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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