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행사에 나갔다 2011년 새해 달력을 기념품으로 받아올 때가 많습니다. 벌써 몇 권의 새해를 선물 받아 쌓아 놓았습니다. 주요 일정을 기록해 놓는, 손때 묻은 올해 달력의 12월을 무심히 넘겨 보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겠지 생각하다가 만나는 2010년의 끝. 단 1초도 남아있지 않은 막힌 벽. 마지막 날의 뒷장은 깎아지른 절벽 같습니다.
12월31일이란 역이 종착역인지 모르고 달리다간 어디론가 추락하여 떨어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13월이 있었으면, 12월 32일이 있었으면, 어리석은 생각을 해보지만 이제 2010년의 속도를 서서히 줄여야 할 시간입니다.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365칸마다 탄 손님들에게 종착역 안내방송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이 열차, 이 열차 14일 뒤면 종착역에 도착하오니 잃어버린 물건 없이 편안히 돌아가시길….'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여행은 결코 편안할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을. 종착역에 내리면 또 2011년의 열차를 타고 즉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번 열차를 타고 오면서도 많은 인연을 만났으며 많은 사랑과 작별을 했습니다.
열차를 갈아탈 때마다 짐이 가벼워져야 할 것인데, 해마다 낡아져가는 여행가방은 무거워져만 갑니다. 새해 열차를 탈 때 가벼워지기 위해 지금부터 무거워진 여행 가방을 정리할 시간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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