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無所有)가 미덕인 시대다. 가지려 모으려 하지 않고 버리고 나누는 삶이 지혜롭다 말들 한다. 여기 평생 소유(所有)를 좇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거꾸로 소유에서 의미를 찾는다.
“이 물건들, 겉으로야 낡고 하찮아 보이죠. 하지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값어치를 높여줍니다.”
언론인이자 경영인으로 약 15년 동안 브라질과 미국에서 생활한 김인규(60)씨가 지난 9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에 고품격 앤티크샵 ‘히스토리크’를 열었다. 미주지역 곳곳을 다니며 밝은 눈으로 직접 수집한 골동품이 1,000여 점이다.
“골동품에는 쓰이던 당시의 역사와 문화가 생생히 담겨 있어요. 그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의식과 자부심, 애국심이 생기죠.”
샵 이름 히스토리크는 역사(history)와 골동품(antique)을 뜻하는 영어단어를 합성한 말. 샵에 들어서면 이름답게 고풍스런 분위기가 물씬 난다. 골동품 하나하나마다 얽힌 이야기가 적힌 쪽지를 붙여둔 손길이 정성스럽다. 쪽지 덕에 옛 것이 남달라 보인다.
“이 무쇠난로 한번 보세요. 아래에 특허 받은 날짜가 1924년 11월11일, 12월18일로 정확히 적혀 있어요. 지적소유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오래 전부터 확립돼 있었다는 증거죠.”
난로 옆 선반에는 어른 발 크기만한 쇳덩어리가 있다. 짧은 막대 위에 깔창 같은 게 얹혀 있다. 약 120년 된 초창기 스케이트다. 지금처럼 부츠가 달려 있지 않고 깔창에 보통 신발을 얹어 끈으로 맨 채 얼음 위를 지쳤다. 블레이드(날)가 두꺼워 스피드를 내기보단 넘어지지 않게 만들었던 걸로 추정된다. 한참 설명하던 김 대표가 책장에서 사진첩을 하나 꺼내왔다.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소문이 났는지 지난해 6월 한 은퇴한 미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레오나드 카다시크라는 이름의 그 미군이 건넨 건 한국전 참전 때 부산과 거제도 등지에서 찍은 우리나라 아이들 사진이었어요.”
부서진 집 앞에서도 피난길에서도 아이들 표정에선 순수함이 읽혔다. 사진첩 첫 장에 ‘KOREAN CHILDREN 1952-1953’이라는 참전용사의 자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귀한 옛 것들을 수집하러 거의 매 주말마다 김 대표는 아내와 함께 앤티크쇼를 찾아 다녔다.
“미주지역엔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물자를 귀하게 여겼어요. 버리지 않고 간직해 뒀다 나이 들고 은퇴하면 앤티크쇼 같은 데서 파는 거죠.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게 돼요.”
어렵게 모은 옛 것들을 김 대표는 이제 스스럼없이 내놓는다. 팔기도 하고 빌려도 준다. 자신은 무소유의 삶으로 돌아가고, 다른 이들에게는 역사와 문화를 소유하는 기쁨을 전한다. www.historique.co.kr, 031-704-1027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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