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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방황하던 지영준 금빛 조련, 정만화 마라톤 국가대표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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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방황하던 지영준 금빛 조련, 정만화 마라톤 국가대표 코치

입력
2010.12.1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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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영준을 만났을 때 반쯤 눈이 풀린 상태였습니다. 마라톤화를 벗어 던지려는 마지막 순간에 운명적으로 만난 것 같습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지영준(29ㆍ코오롱)을 앞세워 8년 만에 금메달을 일군 정만화(51) 원주 상지여중고 육상부 감독 겸 마라톤 국가대표 코치가 털어놓은 소감이다.

지난 8일 오후 강원 원주에 있는 종합운동장에서 그를 만났다. 겨울 추위를 재촉하는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10여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1시간째 훈련 중이라며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마라톤 금메달 코치인데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지 않느냐고 묻자 "황영조(40) 국가대표 감독이 '지영준이 믿고 따르는 지도자는 오직 정만화 감독밖에 없다'며 나를 추천했다"고 황 감독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20여 년간 여자선수들만 지도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지)영준이가 여자들보다 더 여리고 세심한 선수다"고 말했다.

그는 지영준과 사제인연을 맺은 것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첫 만남에서 지영준은 "운동 그만두고 군대 갔다 와서 PC방이나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그는 "은퇴를 저울질하던 그에게 승부근성을 찾을 수 없어 나도 군입대를 권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솥밥을 먹던 상지여고 육상부 이미해(28) 코치의 '오빠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지영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당시 지영준과 연인 사이였다. 소속팀과 오랜 갈등으로 마라톤화를 벗으려고 했던 지영준은 결국 이 코치의 간절한 호소로 정 감독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영준이의 체격 조건을 보니 '이 친구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피드와 지구력 등 마라토너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췄더군요." 하지만 그는 지영준에게 먼저 운동을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마음속에 응어리진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며 "가족처럼 다독여 함께 밥 먹고 대화하는 것으로 훈련의 첫 걸음을 떼었다"고 밝혔다.

"제가 술과 담배를 입에 안대는 대신 커피를 좋아합니다. 저녁 먹고 나서 커피숍에 들러 자연스런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두 달여가 지나자 그는 "영준이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며 "이후 본격적인 몸 만들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쓴 소리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타일러줬더니 받아들이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영준과 호흡을 맞춘 지 불과 1년도 안돼 '대형사고'를 쳤다. 지영준이 2009년 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2시간8분30초로 우승을 차지한 것. 당시 육상계에서는 '지영준은 한 물 갔다'는 평이 나돌던 때였다. 정 감독과 지영준의 찰떡궁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올 초에 열린 같은 대회서도 지영준은 2시간9분대로 준우승했고, 10월 전국체전에서는 5,000m와 1만m를 석권했다.

"영준이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컨디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그는 3년째 지영준을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빛 레이스를 연출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지도력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초연해했다.

정 감독이 이처럼 지영준과 환상호흡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 한국 여자 육상의 특급 조련사로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을 받아들여 어엿한 프로선수로 길러내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 이선영, 최보은, 원샛별 등이 그의 조련을 받아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는 신사흰, 신예슬, 현서용이 뒤를 잇고 있다.

충북 제천에 있는 '박용수 재활의원' 원장으로부터 스포츠 의학에 관한 많은 조언을 받고 있다는 그는 "균형 잡힌 몸매가 선수로서 대성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척추, 골반, 스텝 등 밸런스가 무너지면 결코 오래 달릴 수 없다는 그는 "여자선수들은 마음으로 따르게 해야 한다"며 "무조건 많이 뛰고 훈련시간이 많다고 좋은 선수가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훈련을 게을리 한다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야단치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들은 특히 성장판이 열려 있어 너무 오래 뛰면 역효과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프다고 호소하면 인정해주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스포츠 의학을 접목해 맞춤형 훈련으로 이들의 질주본능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정 감독은 특히"한국 육상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스포츠 의학 도움 없인 불가능하다"며 "지도자들이 먼저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감독은 이와 함께"여자 5,000m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운 염고은(김포제일고 1년)을 지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염)고은이가 성장통을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선수로서의 미래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이은정이 은퇴한 이후 한국여자마라톤을 끌고 갈 유력 주자를 이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적인 손실입니다."

●정만화 코치는

한국 남자 마라토너 최초로 1984년 세계육상선수권(로마)에 출전했다. 2시간22분대의 기록으로 20위권에 그쳤지만 2년 후 국내무대에서 2시간14분10초를 찍어 한국최고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상무를 제대한 89년 우연히 체육교사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보고 원주 상지여중고와 인연을 맺었다. 96년부터 본격적으로 육상부를 만들어 전국체전에서 10년 연속 금·은메달을 따냈고 소년체전에서도 6년 연속 메달사냥을 멈추지 않아 상지여중고를 전국 최고의 육상명문학교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주=글ㆍ사진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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