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울대공원 탈출 곰 포획/ 8박9일 청계산 헤맨 곰 '꼬마' 건강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울대공원 탈출 곰 포획/ 8박9일 청계산 헤맨 곰 '꼬마' 건강했다

입력
2010.12.15 12:22
0 0

'꼬마'는 칼 바람 부는 산 정상 부근에 대(大)자로 누워있었다. 등산객들은 "저게 뭔 일이냐"고 소곤댔다. 꼬마는 수십의 추격자를 따돌리고 열흘 가까이 신출귀몰했던 몸무게 40㎏의 곰, 맹수의 본능을 지닌 녀석이 높이가 600m밖에 안돼 주변 동네 주민들이 가볍게 오르던 경기 과천시 청계산에 축 늘어져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웬걸 녀석을 포획한 서울대공원 관계자들도 "이게 뭔 일이냐"고 맞장구를 쳤다. 돌보는 이 없는 생면부지의 타국 산에서, 그것도 혹한에 헤맸건만 몸무게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오히려 건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 타는 애간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곰은 그간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 9일간의 도피행각을 벌인 꼬마는 그간 어떻게 인간들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렸을까.

일곱 살짜리 수컷 말레이곰 꼬마가 서울대공원 우리를 빠져 나온 건 6일 오전 10시20분, 녀석은 청계산으로 달아났고 15일 오전 8시30분께 포획 틀에 갇힌 채로 발견됐다. 녀석은 그간 청계산의 매봉과 이수봉, 국사봉을 제 놀이터마냥 마음껏 뛰어다녀 등산객 등에게 수 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꼬마의 능력을 간과한 사람들은 당초 직접 잡으려고 나섰다. 그러나 100m를 10초 전후에 돌파하고, 은폐에 능한 꼬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9일 서울대공원은 녀석을 잡기 위해 청계산 정상 부근에 포획 틀 3개를, 14일엔 4개를 설치하고 유인작전을 벌여왔다. 꼬마가 좋아하는 사과와 꿀을 바른 건빵 등을 넣어 녀석을 유혹했다.

추격자들은 녀석이 은연 중에 땅에 흩어놓은 변을 찾아 꼬마의 동선을 파악했고, 공교롭게도 녀석은 14일 추가로 설치한 것 중 이수봉에서 청계사 방향으로 남측 200m 경사에 설치된 길이 1m짜리 드럼통 2개로 만든 포획 틀에 걸려들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 꼬마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포획 틀을 빠져나가려고 사방을 휘저으면서 앞발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들은 꼬마를 마취시킨 후, 보온담요와 그물망으로 감싸 인근 군부대 차량에 태워 서울대공원 동물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서울대공원 모의원 동물원장은 "곰의 체온이 떨어지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일단 건강은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꼬마는 주로 등산객들이 등산로에 버린 음식 찌꺼기나 음식 가판대에 남겨진 어묵 소시지 등을 먹거나 야생의 도토리와 다래 등을 따 먹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적이 없는 틈을 타 이수봉 정상의 매점을 털기도 했다. 절도품목은 컵라면 부스러기와 소시지, 영양갱, 간장 등이었다.

녀석의 자취를 멀찍이서 지켜본 이들은 더러 있으나 꼬마와 직접 맞닥뜨린 사람이 없는 건 녀석이 낮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두운 음지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활동시간은 주로 야밤과 새벽이었다. 아울러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꼬마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등산객들이 오면 먼저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말레이곰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울 정도라 순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변을 지나가던 등산객 최명(70)씨는 "곰 때문에 입산통제가 됐다가 며칠 전에 풀려서 곰이 산에 없는 줄 알고 등산하러 온 것"이라며 "그나마 잡혔다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꼬마는 이날 오후 서울대공원 동물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판정돼, 마취에서 깨어나는 대로 원래 있던 동물원 우리로 보내질 예정이다. 며칠간 누린 달콤한 자유의 추억은 그대로 간직할 것이다. 동물원은 우리 출입문을 정밀 점검해 보완할 예정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