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자라난 상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매번 ‘안타깝게도’ 극적으로 살아나던 그는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네 명과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눈엔 띄지 않는 그들의 정체는 유령. 상만의 몸에 달라붙어 이승에서 못다한 일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이들이 떨어져 나가기 전엔 평생 소원인 자살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만. 돌아가며 빙의하는 유령들의 소망을 하나씩 들어주던 그는 까맣게 잊고 있던 자기의 아픈 과거와 대면하게 된다.
웃음과 감동을 버무린 김영탁 감독의 ‘헬로우 고스트’(22일 개봉ㆍ12세 이상 관람가)의 8할은 상만의 활약에 달려있다. 유령들의 여러 희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1인 5역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차태현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만만치 않은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착 달라붙은 2대8 헤어스타일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골초 중년남성(고창석), 여자라면 눈길을 떼지 못하는 노인(이문수), 코흘리개 먹보 초등학생(천보근), 습관적 울보 여인(장영남)의 캐릭터는 차태현의 능청스런 연기를 통해 재구성된다. 지난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차태현은 “촬영 중 해당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관찰해 내 식으로 표현하려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처럼 안면근육을 최대한 활용할만한 역할인데도 그는 각 유령들의 작은 특징들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머리를 살짝 쓸어 올리거나 음흉하게 눈에 힘을 주는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차태현은 “상만의 기본 캐릭터가 어두우니까 감정을 많이 눌렀고 그러다 보니 내 예전 연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고 말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우울한 모습은 밝은 캐릭터라는 그의 기존 이미지와는 배치되기도 한다. 특히 막판 반전으로 상만이 뜨거운 눈물을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장면에선 의외성의 즐거움을 맞닥뜨릴 수 있다.
“이렇게 많이 울기는 처음입니다. 제가 우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까지 한 역할 중 가장 어두워 연기 도전이라 생각도 했습니다. 연기를 맞게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어요. 처음 반전을 모르고 시나리오를 읽을 땐 ‘왜 나한테 이게 들어온 거지’ 의아했어요. 다 읽고선 ‘엥~ 그렇구나’ 감탄을 한 영화죠.”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그의 이미지와 상만의 공통점은 여전히 억울한 주변인이라는 것. 슬쩍 푼수기 있으면서 주류에 끼지 못하는 착한 이류 인생 이미지는 ‘헬로우 고스트’에서도 반복된다.
차태현은 “내가 좀 그렇게 생겼나 보다. 그런 이미지에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데뷔 때부터 부잣집 아들에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그런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현실성 없는, 오버하는 연기는 싫다”는 게 이유. “못된 역할을 해도 밉지가 않다고 하니 제대로 된 악역을 못하는 단점도 있다”며 그는 작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차태현의 차기작은 ‘챔프’. 아내를 잃고 경찰기마대원으로 딸과 함께 살아가는 전직 경마기수의 역할이다. “말이 말을 안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 제주에서 일정에 쫓기며 촬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문득 반쪽으로 보였다. “‘과속스캔들’ 이후 예기치 않게 세 편 연달아 가족영화네요. 아직 다음 출연작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가족영화는 안 할 듯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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