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불량 국회 추방해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불량 국회 추방해야

입력
2010.12.15 12:04
0 0

여야 국회의원이 뒤엉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예산안뿐 아니라 서울대 법인화 법안,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 UAE 파병동의안 등 나라와 국민의 중대한 이해가 걸린 36개 안건을 무더기로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과 권위, 체면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와 국회 결정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폭력과 날치기로 국사 결정

원래 국회는 말로 국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국회를 뜻하는 영어 표현'Parliament'는'말하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주먹과 무기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투쟁을 하는 것에 가름하여 국민 대표들이 말로 토론과 타협을 거쳐 국사를 결정하는 문명화된 정치 질서가 바로 의회 정치이다. 국회에서 폭력으로 밀어붙여 의안을 기습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문명화한 정치 질서를 포기하고 원시적인 투쟁 질서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적인 남성 정치를 극복하고 평화적으로 의정 활동을 이끌라고 국회로 보낸 여성 국회의원마저도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성적인 폭력을 답습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우리가 법률을 지키고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의안을 처리,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결정했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타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되풀이되는 폭력 국회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결정에는 민주적 정당성도 내용적 타당성도 찾을 수 없다.

먼저 민주적 정당성은 단순히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의해서 선출되었고, 그 국민 대표들이 다수결로 결정했다는 것만으로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 의사는 국회의원의 임기 내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국회가 처리하려는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 결정이 민주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공개적인 토론을 하면서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날치기 의결은 외형만 민주적으로 포장했을 뿐 실질적인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날치기 국회 의결은 내용적인 타당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이번에 국회에서 무더기로 의결된 사안 중에는 전문가 집단과 국민 전체의 사려 깊은 생각과 의견을 모아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야 비로소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심의 조차 없이 무더기로 통과시켰으니 그 의결의 내용적인 타당성을 신뢰할 수 없다.

이런 국회는 더 이상 민의를 수렴하여 법률과 의안을 결정하는 국민 대표기구로서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 또 그 결정의 내용적인 타당성도 보장할 수 없는 불량 국회가 되었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는데 정치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회정치 회복을

정치 선진화를 위해서는 불량 국회를 추방하고 진정한 의회 정치를 회복하여야 한다. 의회 정치는 국회의원들이 말로 하는 정치이다. 국민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만약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는데도 표의 우위를 앞세워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는 발상은 다수의 횡포이지 의회 정치가 아니다.

또한 의석수가 부족하여 의안 의결을 합법적으로 저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를 앞세워 물리적 힘으로 저지하려는 것은 소수의 횡포이다. 다수당은 소수당 의원들에게 충분한 발언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 또한 야당은 여당이 충분한 토론을 거친 후 표결에 붙여 결정하는 것을 감내하여야 한다. 그래야 의회 정치가 되살아난다. 누가 옳고 그른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