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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레임덕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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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레임덕의 공식

입력
2010.12.1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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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SBS라디오 특별기획 '한국 현대사 증언'에 출연해 "IMF 외환위기가 오게 된 것은 최소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65%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제1 야당 새천년국민회의 총재였던 DJ가 노동법 개정, 한국은행법 개정 등 YS 자신이 추진하던 개혁을 반대해 환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은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낯 두꺼운 책임전가라는 비판을 불렀다.

YS 레임덕 부른 노동법 날치기

19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처리만 해도 그렇다. 당시 국민회의측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노동법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집권여당과 대통령이 야당과 노동계 설득에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합의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YS의 뜻에 따라 밀어붙이기를 택했다. 크리스마스 휴일 다음 날 새벽 6시 당 소속 및 친여 성향 의원 154명을 은밀히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시킨 뒤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 등 11건의 법안을 6분 만에 날치기 처리했다.

'거사'에 성공한 의원들이 여의도의 한 설렁탕 집에서 축배를 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곧바로 노동계 총파업과 야당의 장외투쟁이 이어졌고, 한보 비리와 YS차남의 국정농단 폭로가 겹치면서 YS정권은 극심한 레임덕에 빠져들었다. 외환위기를 거쳐 결국 그 해 말 정권을 야당에 내주게 되었다. 1995년 지방선거 패배 후 절치부심 끝에 1996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한 YS에겐 밀어 붙이면 된다는 자만이 있었다. 그게 야당을 배제한 노동법 날치기의 배경이 됐고 여기서 힘이 빠진 YS정권은 환란을 막지 못해 국가와 국민을 큰 위기에 빠뜨리면서 몰락해 갔던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 강행 처리의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여권 안팎에서 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처리의 악몽을 떠올리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내 비주류를 자처하는 홍준표, 정두언 최고위원 등이 청와대의 주문에 끌려 다닌 당 지도부에 날을 세우는 데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칠 수 있다.

그러나 친이 주류 의원들까지 이번 예산안 강행처리의 후유증이 정권의 레임덕에 미칠 영향을 우려할 정도라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들도 정권 말기 급격한 레임덕에 빠지는 레임덕의 공식을 새삼 확인한 게 아닌가 싶다.

정치적 순리로 본다면 정기국회 회기가 끝난 뒤 임시국회를 소집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순리보다는 밀어붙이기를 택했다. 정기국회 내에 처리해 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문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여의도 식 정치를 싫어하는 이 대통령에겐 타협과 양보보다는 정기국회 내 처리라는 원칙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옳으니까'라는 독선과 자만의 산물이 아닐까.

임기 반환점을 전후해 공정사회 화두를 띄우고, G20 서울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정권의 레임덕은 이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 강행처리에 대한 야당의 강한 반발과 비판적인 여론, 여권 내부 갈등이 겹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형님 예산'을 둘러싼 논란은 그 실체가 무엇이든 정권에 대한 냉소적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영포 인맥이 주도한 민간인 사찰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고,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정권의 힘을 빼는 권력형 또는 친인척 비리가 불거질 개연성이 높아진다.

예산안 강행처리는 자만의 산물

북한의 도발과 남북긴장 고조도 부담스러운 변수다. 과거에는 북측 도발이 보수정권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는 요인이었으나 연평도 포격 이후의 흐름은 다르다. G20 서울 정상회의 직후 50%를 상회했던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하락세로 반전한 추세가 뚜렷하다. 보수와 진보진영 양측이 정권의 안보 무능에 대해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년이 넘게 남은 정권을 두고 레임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정권만이 아니라 국민에게도 큰 불행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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